엄마는 풀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을 볼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by 이선

음식을 볼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불혹에 가까워져서야 나를 낳았습니다. 요즘이라고 한들 상당한 늦둥이입니다. 일곱 살 되던 해 동네에 처음으로 대형 마트가 생겼습니다. 그곳을 다녀오면 발바닥이 시큰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이었습니다. 또한 모자의 데이트 장소였구요. 내 몸만 한 짐을 들어줄 수 없는 막내와 엄마가 손잡이 하나씩을 나눠 들어 저녁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저 앞에서 어머님들의 짐을 가뿐히 들어주는 커다란 형들을 보며 엄마는 언제나 말했습니다.


"야야 언제 커서 저래 번쩍번쩍 엄마 짐 들어줄래?"


엄마 친구의 자식들은 다들 장성해있었고, 난 여전히 저녁마다 신발에 놀이터 흙을 잔뜩 담아오는 꼬마였으니 서글펐나 봅니다. 이놈을 언제 키우나 싶었나 봅니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엔 군것질거리를 파는 아저씨가 계셨습니다. 우리 모자는 그곳에서 계란빵 또는 호두과자를 종종 사 먹고 했는데 그날 그녀는 웬일로 풀빵을 한 봉투 택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사거리 횡단보도에 함께 들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풀빵 한 알을 입 안에 쏙 넣더니 감탄사를 남발했다.


"풀빵 진짜 맛나네 계란빵보다 이게 훨 낫다!"


그날 난 엄마가 정말 풀빵을 좋아한다고 믿어버렸습니다.


꼬마가 놀러 나가기 전이면 엄마는 꼭 500원 동전 하나를 내게 쥐어주었습니다. 놀이터 흙을 온몸에 잔뜩 묻히고 놀다가 갈증이 살짝 밀려들 때면 그 동전으로 놀이터 옆 가게에서 뽕따 또는 폴라포로 목마름을 달래곤 했는데요. 그러다 이따금 엄마가 생각나는 날이면 함께 흙 범벅인 친구들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목을 달랠 때 난 조용히 놀이터 지하주차장에 있는 화장실 수돗물로 갈증을 없애버리고는 오백 원을 주머니 속에 고이 품어 놓았다가 채 저녁이 되기 전 서둘러 저 멀리 있는 풀빵 아저씨에게 가곤 했습니다.


아저씨 풀빵 500원 치 주세요.


누런 봉지에 풀빵이 한 알 한 알 들어갑니다. 혹여나 고사리 손으로 놓칠까 봉지가 구겨지도록 손아귀에 힘을 잔뜩 준 채 엄마를 향해 뛰어갑니다. 대문에 도착해 벨을 누르고 내 이름을 말하면 마치 자동문 처럼 문이 열립니다. 마당에서 신발 가득 있는 흙을 탈탈 털어내며 당신에게 봉투를 건넵니다.


아이고 우리 막내가 엄마 사다 줬네


내가 풀빵을 사 올 때면 그녀는 왜 친구들이랑 음료수 먹지 않고 엄마를 사다 주냐 나무랐지만 그녀의 눈은 행복으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한알 한 알 풀빵이 그녀의 입에 들어가 마침내 봉지 휑하니 비어질 때까지 나는 그녀의 옆에 꼭 붙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종종 풀빵을 사러가는 날이 이어지자 언제고 풀빵 아저씨가 물었다.


니는 풀빵을 좋아하나 보네


아인데요 엄마가 좋아해요


글나, 카믄 엄마를 진짜로 좋아하나 보네


그때 내가 먹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가 먹는 걸 보면 배부르다는 어른들의 우스개 소리가

사실은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뽕따와 바꾼 풀빵 열 알.

당장 당신의 바람처럼 십 수년을 뛰어넘어 자랄 수 없는 7살 꼬마의 최선의 사랑이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훨씬 지나고 엄마는 진실을 토로했는데요. 그날만 단지 그냥 풀빵이 먹어 보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 후로 자꾸 제가 사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나중엔 풀빵이 물려 밀가루 냄새가 나는데도 흙투성이의 꼬마가 누런 봉다리를 가지고 오는 그 모습에 참고 먹었다 합니다.


엄마는 풀빵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걸었던 발걸음을 담았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풀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풀빵을 보면 엄마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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