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비저너리 크루 에세이 10 ㅣJun. 22. 2020
지난 에세이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행복을 미루지 않겠다고 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받아 든 요즘의 나는 어떤가?
새로운 해의 반이 지났다.
올 해는 나에게 참 어영부영 온 해였다. 이렇게나 오래 머물지 모르던 직장에서 햇수로 3년이 되는 해였고 오래 머물지 몰랐으니 이렇게 이 일에 삶의 많은 분량을 내어줄지도 몰랐다.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다른 곳에서 일하거나, 일하기를 준비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를 다시면서 생활 패턴은 정착했으나 정작 내 마음이 정착할 공간은 좁아졌다.
녹아 없어지는 '나의 삶'이라는 빙하 위 '일'이라는 조각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겠다고 애쓰던 모습이라니. 그런 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도, 해내거나 도전하고 싶은 것도 별 없이 벌써 한 해의 반이 훌쩍 갔다.
일을 하면서 점점 더 깨달았다. 너무 일찍 (너무 큰 프로젝트의) PM이 되었다.
새로운 명함, 연봉협상, 새 팀원과 R&R을 정할 때만 해도 이 무게감을 알 수 없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디라는데, 나는 이게 왕관인지도 모르겠고 무게는 죽을 맛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힘이 되어주고 나의 무게를 줄여주려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있는 법. 초보 PM은 상반기를 통으로 일에 내어줘 버렸다.(공공의 적 코로나도 이 대혼란에 한몫했다.) 나를 아끼는 우리 팀장님은 내게 항상 혼자 다 책임지려 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존감이 끝을 모르고 떨어지니 우선은 나를 갈아서라도 이 모래성은 지켜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믿고 이 자리에 앉혀준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증명하고 싶었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성장이라도.
그러다 보니 삶의 경계는 쉽게 무너졌다.
일상, 여유, 취미와 관심사, 일 외의 나
이런 것들은 미루고 사라지는 것이 쉽지 새로 쌓아가기는 참 어렵다는 걸 배우고 있다. (배우지 않아도 알면 참 좋을 텐데 참 삶이 꾸준한 배움이다.) 요즘의 내가 일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나를 참 매력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나에게 계속 묻는다.
이 시기가 지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고.
어쩌면 이 바쁨과 혼돈은 일을 하는 내내 계속될 수도 있는데, 그걸 세차게 마주한다고 무의식적으로 포기한 일상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성장의 대가로 삶의 일부를 내어준 나를 추후에 비난하지 않겠냐고.
사실 지금 내가 지킬 수 없는 여유를 가지겠다, 한 순간씩 일상을 늘리려고 노력하겠다 는 말이 거짓말인 게 뻔해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뭐 하나 뛰어들면 물 불 안 가리고 어떻게든 해쳐가지만 완벽한 멀티태스킹은 서툴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계속 물어보면, 내가 계속 나에게 물어보고 대답하다 보면 나의 욕심과 현실 그리고 이상 사이에서 모래성을 한 스무 번쯤 쌓아보면 나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냐는 질문에 대해, 그게 '일'이라면 후회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 비슷한 게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일을 때려치워도, 내가 더 이상 '일'으로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우지 않는 사람이 되더라도 내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던 드라마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서울의 야경에 우리는 서로 위로받는다고, 나만 이렇게 치열한 게 아니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퇴근 택시가 버스보다 익숙한 요즘. 서울의 고속도로에 위로받는 지금의 나는, 평온하고 안정된 일상이나 나중에 곱씹을 올해의 여행사진 하나 없지만 누군가의 위로는 되겠다 싶어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계속되는 나의 질문에 누군가가 정답을 내려주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조언을 들어보니 역시 내 옷은 내가 골라야 하나보다. 그래도 이 질문들에 옹알이하듯 대답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나도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랬다고. 한 걸음 떨어져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그때 이 글을 다시 꺼내봐야겠다.
내게 해주고 싶은 말 보다 하고 싶은 질문이 많은 요즘.
2020년 상반기가 '일'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흡수되어버리기 전에 계속 질문을 늘려가야겠다.
본 에세이는 청춘들의 오아시스 '비저너리' 브런치 채널에 2018년부터 연재된 크루에세이의 일부입니다.
삶의 질문을 늘려가며 나중에 이 글을 다시 꺼내보겠다는 다짐을 한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
저 시기에 자신을 보며 그 친구의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을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저 당시에 하고 있던 질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게 질문이 생긱다면 그 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참 여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 때의 자신에게 참 노력했고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정말 열심히 산 시기가 있으면, 여유롭거나 안정기의 자신을 쉽게 의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이래도 되나? 너무 여유롭거나 나태한가?
평생 질리지 않고 좋은 템포를 유지하려면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구분해서 자신을 여유로운 서퍼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는 이 서핑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