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크루에세이 12] 언제 가장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나요?
잘하고 싶을 때,
잘하고 싶을 때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다.
올해는 잘해야 하는 일이 많은 해였다.
일에서도, 그 외의 다양한 곳에서도. 원하던 원하지 않았건 잘 해내야 하는 일들이 불쑥불쑥 나타났고 산불을 끄는 사람처럼 하나의 구역이 마무리되면 다른 하나의 구역의 불을 끄면서 마음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올해가 석 달 남짓 남아버렸다.
그리고 최근, 한 해 내내 불만 끄러 다니다 보니 무거워진 몸과 마음이 파업을 선언하면서,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고민은 안 그래도 잦았던 야근이 더 잦아진 나에게 가족들이 하는 말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네가 회사 먹여 살리니?" (라는 말속에 포함된 왜 이렇게 매일, 늦게까지, 헌신적으로 일하냐)라는 말에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라며 말을 흐리던 내가 문득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다.
나는 왜 이렇게 헌신적으로 일하는가,
이 프로젝트가 내 온 마음을 담았다거나 혹은 삶의 철학과 딱 맞아떨어지는 인생의 기회도 아닌데. 책임감과 애정하는 마음? 그것으로는 내 헌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2년 전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지금과는 다른 마음가짐이었겠지. 하고 싶던 분야 업무에 대한 갈증, 프로젝트 주제에 대한 공감, 업무 성장의 욕구 등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최근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월급'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 때. 그 어색한 기분은 아직도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회사 외에도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팀장님과 친한 동료들에게 가끔 '정인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냥 멍하니 별생각 없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또 근래에는 '내 속을 나도 잘 모르겠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다들 아닌 것 같단다.
이번 에세이 질문을 받고서야 하는 생각이 사실 그때의 나는
(즉, 처해있는 상황이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대화나 편안한 자리에서 나는)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 '사실 이건 다 내가 저지른 건데, 내 실력이 거지 같아서 그런 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를 곁에서 지켜보고 일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해주겠지만, 뭐든 잘 해내지지 않는 요즘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그러하다. 새로운 직급이자 책임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지 언 4개월에 접어든 지금의 나는 스스로 보기에도 잘 못 하고 있다.
최근 퇴사를 고민하다가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나중에 이런 상황을 또 마주했을 때도 내가 도망갈까 봐, 이게 이겨내지 못하는 습관이 되는 것일까 봐 인걸 보면 나는 요즘 스스로가 썩 맘에 들지 않나 보다.
썩 맘에 들지 않는 스스로의 성과를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으로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의 나는 일상이 없다. 머릿속에도 한 주의 스케줄이나 관심사, 그리고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들도 모두 일에 연결된 채 다시 일을 잔뜩 들고 와버린 이번 연휴도 부질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최근 이 모든 게 내가 '잘하고 싶어서,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 그리고 빠르게 잘 해내야 할 때. 잘 못하겠다는 마음에 솔직해지기 어려웠나 보다. (그리고 그 잘해야 하는 일이 사회에서 나의 가치를 평가받는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 더더욱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사람들은 잘 못하겠는 것을 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까?
너무 어렵다고, 내가 하기는 힘든 일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일이 해일처럼 불어와 나를 덮치고 이리저리 흔드는 지금에서야 솔직한 내 마음을 들춰보고 있다.
어려운 걸 알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스스로도 속일 수 있을 만큼의 강한 '할 수 있다' 최면을 걸고
그 최면이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혀 슬슬 풀릴 때쯤 나는 숨겨왔던 감정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때에는 일이 잘 풀리고 있더라도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거지 같은 거면 어떻게 해' 그래서 나중에 결국 구멍이 발견되고 와르르 무너지면, 혹은 지금 발견된 구멍이 사실 내가 크게 내놓고도 모르는 거면?
결국 이 고민들이 나의 야근과 헌신의 동력이 되었나 보다.
이 이야기에는 썩 괜찮은 맺음말이 없다.
그래서 진짜 내가 부족한 건지, 아니면 나는 사실 꽤나 잘했는데 상황상 내가 나를 의심하는 것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현재 진행형의 폭풍우가 끝나고 나면, 아니면 적어도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속으로 무슨 생각해?'라고 물으면 솔직하게 말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로 가득 찼던 한 해가 겨우 한 분기 남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성장을 했는지 아니면 나중에 치를 떨 경험으로 남는 업무를 했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나중에 이 일에서, 지금의 나에게서 한 발짝 정도 떨어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그때는 그 구멍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서 와서 나를 그렇게 괴롭힌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스텝은 그걸 알고 정해봐야겠다.
본 에세이는 청춘들의 오아시스 '비저너리' 브런치 채널에 2018년부터 연재된 크루에세이의 일부입니다.
2020년을 한 분기 남겨두고 맞은 겨울은 자가검열의 폭풍을 맞는 계절이었습니다.
소리 없이 내려 밤새 쌓이는 함박눈처럼, 새 직급과 일의 무게는 알게 모르게 마음에 쌓여 오롯이 '일'만 바라봄에도 그런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과소평가하던 시간이었어요.
저 고민의 시점에서 3년이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내가 일잘러인가 하는 고민에는 선뜻 "예'라고 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 당시에 겪던 업무의 어려움 중 일부의 것들은 이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로 분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일을 하며 몇 번의 어려운 산을 넘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뿌듯한 상황도 많았습니다. 참 고생스러운 시간이었기에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하겠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하겠지만, 그 시간을 후회하는가 라는 질문에도 역시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견뎌 자신에 대한 불확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노력한 3년간의 나에게, 잘했다고 말하는 조금은 후한 오늘이네요:)
역경은 되돌아봐야 희극인가 봅니다.
올 해에도 여전히 저는 스스로를 믿기 힘들겠지만, 자기 검열과 불신의 시기를 거치게 하는 열 가지의 주제 중에 서너 개쯤은 또다시 '정말 할 수 있는'일이 되는 시간이 되게끔 해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