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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Apr 06. 2023

딸이 친구가 되는 순간

 학교 재량휴업으로 쉬는 날이다.

똑소리 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 8세 여아는 입학 이후로 꽤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학교를 안 간다며 대단히 기뻐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에서 놀고 싶어서 라고 했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랬다(여전히 그러하다). 학교를 안 가는 날은 모든 학생(과 교사)에게 좋은 날인 게 확실하다.


하지만 7세 동생은 유치원에 가야 하니 내 아침 일상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 과일을 깎는 나에게 첫째는 동생이 유치원 버스를 타는 시각을 물었다. 답을 듣고 시계 보더니 다급히 옷을 입었다.

- 엄마, 오늘은 내가 00이 유치원 버스 타는 곳 데려다 줄게!

- (다소 난감) 음.. 오늘은 비도 오고, 엄마도 같이 가자.

- 제발 엄마, 내가 혼자 할 수 있어! 00이 버스태우고, 잘 탔는지 지켜보고! 손도 계속 흔들어 줄게. 내가 고싶어요!


'내가 할래'라는 욕망과 '언니 노릇'이라는 허세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듯하다. 정작 동생은 엄마와 나가고 싶은 눈치였는데, 언니 방에 데려가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닥속닥 거더니 방을 나오며 오늘 언니랑 나가기로 했단다. 짐작컨대 다음에 유치원놀이 할 때 선생님 시켜준다고 꼬신 것 같다.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선 첫째는 잠시 뒤 의기양양한 태도로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다.

- 오랜만에 유치원 선생님 서 좋았어! 그리고 민지할머니가 나보고 이렇게 말했어. (성대모사하며) 아이고 기특하네!

- 그랬어? 우리 딸 진짜 기특하네.

- , 나중에 데리러 나갈 때도 내가 가서 데려올 거야.




동생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까지 약 6시간. 우리는 마트에 들렀다가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뒷좌석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야 했던 아이 오늘 조수석에 앉을 수 있어서 신이 났다. 얘는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오디오가 좀처럼 쉬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비교적 차분해 보였다. 엄마랑 둘이 있어서일까. 자기 말을 가로채는 경쟁자가 없어서일.

- 엄마, 비 오니까 좋다 그치? 우와 이거 봐요 엄마 빗방울이 창문 옆으로 굴러간다! 봤어? 

  엄마, 저 차에 모오r닝 이라고 써있어. 저 차는 케이.. 칠?

- 응, 케이세븐?

- 아 케이쎄븐! 음, 저 옆에 차는 선.. 애.. 타!

- 쏘나?

- 아, 엄마 나는 모r닝 차가 좋아, 긋 모오r닝~ 같잖아.

 

유치원에서 배운 파닉스를 총동원해서 처음 보는 단어를 읽는 그 작은 입이 너무 웃겨서 나는 웃음이 터졌다. 도로에 있는 차종을 죄다 읊었을 즈음 점심으로 뭘 먹을지 생각하다가 문득 동선에 맞는 베트남음식점을 떠올렸다. 지난번 꽤 오래 줄 서서 웨이팅 했었는데, 오늘은 때마침 오픈시각이다.

- 우리 쌀국수 먹으러 갈까? 지난번에 갔던 식당이 이 근천데.

- 베트남 쌀국수? 좋아! 앗 근데.

- 응 왜?

- 그 초록색.. 파는 빼주세요.


편식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식사 때마다 조급함과 안타까움을 누르고 너그러워지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와 단둘이 있어서인지 나도 평소보다 관대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다가 하나가 되니 실로 여유로웠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내릴 때도, 손잡고 걸을 때도, 그릇에 음식을 덜어줄 때도, 끊임없는 질문하는 것도, 한 명만 신경 쓰면 되니 뭔가 허전할 정도로 수월했다.


음식이 나오고 내가 습관처럼 사진을 찍자 아이도 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따라서 사진을 찍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습자지처럼 복사하는 아이를 보면 가끔 아찔해진다.


둘이서 음식을 싹싹 비우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마트에 갔다. 디저트로 버블티를 먹고 싶다고 해서 푸드코트에 앉았다. 지난주에 왔었는데 또 왔다며 오늘은 뭐 살 거냐고 엄마가 오늘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냐며 또 쉼 없이 재잘재잘. 그러다 갑자기 200원을 요구하더니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생수를 뽑아왔다. 눈을 반짝이며 너무 재밌다고 한 개 더 뽑으면 안 되냐고 른다.

자라면서 너는 또 무엇을 보고 눈을 반짝일까.



쇼핑을 마치고 도서관에 갔다. 주차를 하고 내리려는데 강풍에 우산이 뒤집힌 채로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 우산 펴면 저렇게 될 것  같은데, 도서관 입구까지 몇 걸음 안되니까 우리 그냥 뛸까?

- 좋아요!

- 오케이, 준비됐지?

아이는 설렘과 불안과 즐거움이 뒤섞인 얼굴로 끄덕였다.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아이와 손잡고 뛰었다. 생각보다 센 바람에 놀란 우리는 꺅 소리를 질렀다.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서 물웅덩이를 미처 피하지 못 옷에 물이 다 튀었다. 자동문 사이를 통과한 우리는 서로의 행색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바짓가랑이는 흙탕물로 젖었고 머리카락은 온통 산발이 되어 있었다.

- 엄마 괜찮아?

아이가 웃으며 물었다.

- 응, 옷은 빨래하면 되고, 몸은 샤워하면 되지. 잘 뛰었어!



바깥 날씨와는 무관하게 도서관은 평화롭다. 나의 안식처에서 내 딸도 편안해 보였다. 3층에 가서 내 책을 먼저 빌린 뒤 1층 어린이 열람실에 들어가 각자 책을 봤다.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 꺼내본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은 나에게 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불과 일 년 전 만해도 혼자서는 읽지 못했고 읽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늘 엄마와 함께 책을 골랐고, 책 읽기란 늘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학교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빌려왔다고 했. 아이는 확실히 나에게서 분리되고 있다. 기특하고 홀가분하면서 동시에 서운하고 허전 이상한 마음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샀다. 내 옆에 앉아서 따끈한 감자튀김을 먹으며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행복해 보였다. 너랑 둘이 있어서 엄마도 정말 좋은 날이었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를 낳은 그 순간부터, 더 정확히는 임신 중 입덧을 시작했을 때부터,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돌봄 노동의 강도는 곱절이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나를 자책했고, 애초에 결혼이라는 걸 하는 게 아니었다며 젊었던 나의 무지를 책망했다. 출산 이후부터 나는 나라기보다 그저 누군가의 엄마였다. 그 거대한 역할은 나를 집어삼켰고, 육아라는 세계에서 나는 소멸된 듯했다. 어서 커라, 너희가 어서 커야 나도 좀 살지.. 아이들을 보며 푸념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빨리 자라는 아이들이 '아깝다'라고 느낀 것. 자고 나면 팔다리가 쑥쑥 길어져 있는 첫째가 경이로울 만큼 아름답고, 아직도 가끔 이불에 오줌을 싸는 둘째는 정말 골치 아프게 귀엽다. 이 모습이 찰나에 머문다는 것을 알기에 매 순간 눈에 담고, 그걸로 모자라 사진을 찍인화해 둔다. 아이들의 신체가 자라고, 말이 늘고, 사고가 확장되는 일련의 과정을 밀착 관찰하며 때때로 감격스럽다. 그 대부분의 시간은 지난하고 궁상맞고 처절했지만. 어른들이 늘 하는 '애들 키우기 힘들겠지만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의 의미를 금씩 알아간다. 아이와 피부를 맞대고 누운 침대에서 극도의 안정감을 느끼며, 내 삶이 아이들의 존재에 의지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 엄마라서 못하던 숱한 것들 대신에 아이 엄마이기에 알게 된 귀한 것들을 발견하는 중이다. 오늘 딸과 친구처럼 보낸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도 그 귀한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앞으로가 궁금하다. 자식은 과연 내 삶을 어디까지 채우는 존재일까. 부모자식이라는 불가사의한 속성을 나는 과연 어디까지 가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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