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누군가가 나에게 고민을 토로한다.내가 겪은 일과 흡사한 이야기에 공감된다. 해결책을 조금 알 것 같다.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는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과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
애정인지 걱정인지 참견인지 오지랖인지.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 더 나아가서 타인을 컨트롤하고 싶은 욕망. 이것은본능의 일종일까.
타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내가 알기로 저것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는데! 나는 그걸 말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물론 반대의 입장도 되어보았다. 나의 말을 들은 누군가가 나에게 뭔가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혈안이 된 듯한 상황. 그러한 상황은 두 가지 요소에 따라 크게 다르게 해석된다.
1 평소 상대와 나 사이에 래포(rapport)가 어느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지.
2 상대가 진정 나를 위하고자하는 건지, 아니면 충고를 위시하여 우월감을 표출하고 싶은 건지.
(최악의 케이스는 나와 신뢰의 기반이 약한 사람이
‘이거 내가 정말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인데..’로 자기 자랑을 할 때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끔 내 세계에 매몰되어 눈치 없는 말을 뱉으면서도 타인의 말에는 유독 예민해서 상처를 자주 받는 한심한 처지이다. 촉수가 쓸데없이 센서티브 하달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게 쉽지 않다. 딱 내 그릇만큼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좁디좁은 인간관계를 파탄 내보기도 했고, 오래도록 돈독하게 유지시켜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 넘는 말을 해서 떠나보낸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속이 쓰리다. 그런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기에 되도록 충고나 조언 같은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어쩌면 지금 쓰는 이글도 누군가에게는 충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염려된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며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중이다.) 상대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때, 일단 상대방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것인지를 파악해 볼 일이다. 전자의 경우라고 판단되면 조심스레 운을 떼어본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감’이라는 단계를 반드시 거친 뒤 조심스럽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랬구나, 그런 일을 겪다니 정말 힘들었겠다. 음, 나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 너의 경우에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어.” 이런 식이랄까.
사실상 내가 상대에게 해줄 말은 나의 경험치를 넘어서지 못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말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이다. 충고나 조언은 상대방이 그것을 명백히 원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것이 내 경험치의 결론이다.
상대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사실 이 부분을 판단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땐 그냥 들어준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경청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대방은 자신의 속내를 말로 발산하며 어느 정도의 위안과 내적 평화를 얻을 것이다. 나의 조언은 딱히 필요치 않다. 이런 경우에 참지 못하고 충고를 해버리면 대체로 서로 각자의 이유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상대방이 안타깝고 각별해서 더 목에 핏대를 세우게 되고, 상대방은 내 말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하며 더욱 답답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비슷해 보이는 성향의 인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부분에서 모두 다르다. 나에겐 찰떡 같이 맞아 들었던 방법이 상대에게도 똑같이 먹히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걸 잊고 우리는 가끔 단순한 기준, 이를테면 mbti 같은 것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하고는 그럴 땐 이렇게 해야지! 그런 사람은 이렇게 대해야지! 하는 알고리즘적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는 삼가는 것이 관계의 롱런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아낀다면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은 욕구를 잠시 접어두자.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가 나의 말을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곤 하지 않던가. 그리고 높은 확률로 대부분의 고민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걸 나중에 깨닫는다.
우리는 타인의 말보다 자기 경험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다. 실패를 겪으며 알아서 배울 것이니 상대에게 무심하라는 것이 아니다.상대의 어떤 말과 행동에는 분명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의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고 믿어볼 필요가 있다. 그건 어쩌면 치열한 이해를 요하는 일이 아니라 맹목적 존중이 수반되는 일이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실질적으로 가능하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