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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y 15. 2022

SNS는 그만두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충분히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으며, 그로서 내 삶은 충만하다는 사실.


  이상적인 순간들을 포착하여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차곡차곡 전시했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을 현실에서 발견하고 싶었다. 그것들을 보여줌을 통해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인정 욕구는 필연적으로 비교를 불러일으켰다. 더 잘하고 싶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 누군가보다, 혹은 과거의 나 자신보다 더.      


  나는 어릴 때부터 인정 욕구가 높은 아이였다. 위로 언니,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던 출생 서열의 영향이었을까. 부모에게, 선생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바락바락 애썼다. 칭찬과 인정의 부재 상태는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는 한편, 나와 달리 인정 욕구가 높지 않은 이들을 동경했다. 그들은 안과 밖이 자유롭고 대체로 자존감이 높아 보였다. 그들은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보다는 ‘내가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에 더 민감한 것 같았다.  

    

  외부의 소리에 심란해질 때면 적막한 곳으로 귀촌해서 내 삶에 집중하며 사는 것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가 문명의 것을 꽤 좋아한다는 걸 안다. 때때로 카페나 영화관, 도서관과 대형 서점 등에서 익명으로 대중 속에 파묻히고 싶은 것이다. 내적으로는 해방되고 싶으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어떤 선 안에 머물고 싶은 욕망. 그 어렵다는 ‘적정선’에 대해 늘 고민한다. 어린 시절에 비해 인정욕이 한층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완전히 해방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까. 모순투성이인 나라는 인간에게 이것은 인생의 숙제인 듯하다.



덧.

이런 공간에 이런 속내를 써서 공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어찌보면 스스로 많이 해방된 듯 합니다. 그러면서도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라는 말이라도 들을까봐 두렵습니다. 부끄러워서 숨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보여주고 공유하고 싶은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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