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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l 21. 2023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뭔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잠든 딸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감은 눈꺼풀의 가장자리에는 새까만 속눈썹이 촘촘하다. 살짝 벌린 입 가까이 귀를 대보면 쌕쌕거리는 숨이 들락날락하는 소리가 들린다. 꿈을 꾸는 중인건지 일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꿈에서 뭘 하고 는 걸까.


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눈을 마주하고 경청한다. 그리고 말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는 입으로 말하는 언어와 꼭 맞는 얼굴 표정을 생동감 있게 사용한다. 정말로, 굉장히, 심하게 라는 부사를 넣어서 감정을 과장하기도 한다. 이 사람에게 언제부터 이런 습관이 있었을까.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해를 불러온다. 이해는 공감이 나아갈 길을 터준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은 사람에 관한 글이다.

이 책은 사물을 통해 사람을 불러내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 안의 어떤 기억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준 사소한 기억들, 그 사건들에 배경음악처럼 깔린 감각과 정서들. 내 옆에 있었던 - 오래 머물렀던, 혹은 잠시 스쳐간 모든 - 이들 저마다의 삶까지.


삶은 대체로 고단하고 우리는 자주 외롭다.
곁에 누군가가 있음에도 외로움을 떨쳐낼 수 없노라면, 잠시 가만히 들여다보기를. '아, 당신에게는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라는 마음이 싹트는 순간, 바람에 날리던 모래알이 비에 젖어 단단해지듯 내가 딛고 일어설 안전지대가 생겨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연대, 혹은 유대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 나는 지리멸렬한 관계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가족적 의무, 사회적 압박, 타인의 시선, 규범, 생애주기의 과업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따위가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내 욕구를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몰라서 겉으로는 착한 아이행세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내 속은 활활 타들어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비로소 나를 중심에 두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렇게 얻은 고독과 자유로움은 은밀하게 달콤했다.


하지만 이윽고, 고독이 고립이 되고 자유가 단절이 되는 순간 찾아왔다. 운 좋게도 내 주위에는 품이 넓고 다정한 이들이 있었다. 남의 불행 위안삼지 않는 그들에게 나의 고통을 꺼내놓았다. 나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내 말을 경청하고 공감했으며, 자신이 겪어온 고통을 조심스레 고백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위로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강한 유대감은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이향규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글을 읽으며 그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세상에는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교사로서, 이웃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격체로서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갈 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닮고 싶은 선배님을 한 명 더 찾은 것 같아서 기쁜 날이다.   







이 글을 쓰 친애하는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을 떠올렸습니다. 의식으로 점철된 저의 모자란 글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이라는 방식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화답해 주시니 그 또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일면식 없이 텍스트를 매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랍습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가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것을 통해 힘을 얻는 일 또한 연대가 아닐까요. 글 쓰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락에 빠졌던 저를 구했는데, 당신의 다정한 말과 글은 세상의 아름다운 면면을 제게 확인시켜 주었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바람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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