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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l 27. 2023

나는 요가를 한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나는 요가를 한다. 십 년 넘게 꾸준히 해온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이다.  


요가는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 늘이고 비틀고 뒤집고 세우고 버티는 ― 것 이상의 일이다. 나에게 요가는 실존이다. 요가는 자칫 뭉치기 쉬운 근육을 구석구석 풀어준다. 그 근육의 대부분은 내 몸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요가 호흡을 하면서 나는 내가 숨 쉬는 방식을 인식한다. 요가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매 순간 일깨운다.



나에게 요가는 구원이다. 요가는 근육 약화와 경직으로부터 내 몸을 구원한다. 요가는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내 마음을 구원한다. 요가는 나의 심신을 쇠락으로부터 구원한다.



나에게 요가는 생업이다. 얼핏 보면, 일과 중에 짬을 내어 요가원에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요가를 통해 일상의 필연적 피로를 씻는다. 요가 중에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의 상태가 되었다가 비로소 사태의 본질을 발견한다. 본질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요가를 하면 단지 기분이 좋다. 격렬한 아사나를 마친 뒤 사바아사나를 하고 나면 다시 태어난 듯 정신이 맑게 고양된다. 고단한 생업을 다시 마주할 새로운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운동이 다 그렇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요가할 시간에 차라리 헬스장에 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거나 달리기나 테니스나 수영이나 줄넘기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으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요가는 단순히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가는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기 위한 거의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호흡이다. 요가를 하면서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관찰한다. 요가를 하고 있을 때면, 나는 어쩌면 요가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요가는 운동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요가는 목적이 없다. 요가는 나의 경쟁적인 기질을 지그시 일깨워준다. 나는 더 잘하고 싶어, 저 사람보다 잘하고 싶어, 어제 못했던 걸 오늘은 하고 말테야 하고 고개를 쳐드는 내 마음을 보게 한다. 요가는 나에게 ‘그래서, 더 잘해서 뭐 할 건데?’라고 나직이 묻는다. 더 잘해봤자 뭔가 대단한 것이 돌아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나는 알아차린다.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요가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p.288



인생에 정해진 목적은 없어도 단기적 목표는 있다. 요가에 목적은 없지만 아사나의 단계는 있다. 헤드스탠드(머리서기)가 안정적이니 이제 엘보스탠드(팔꿈치서기)에서 버텨보겠어. 언젠가는 핸드스탠드도 할 거야.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절박한 목적은 아니다.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언젠가 되리라는 걸 경험으로 안다. 결국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 과정이 재밌으니까.



목적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내가 너무 지나친 궁핍에 내몰린다면, 생존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 내가 너무 타인의 인정에 목마르다면, 타인의 인정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 내가 시험에 수를 한다면, 시험 합격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
p.292



나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오늘도 요가를 한다.






이 글은 김영민 교수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필로그의 변주입니다.

저자의 글은 산책에 관한 것이었고, 저는 그것을 요가로 바꾸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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