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Oct 13. 2023

이명이 들린다

새벽일기

언니가 나오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언니는 호텔 같은 곳에 살았다. 잠시 나에게 자기 방을 내어주었는데, 그 방이 너무 아늑했다. 꿈의 분위기상 나는 어떤 급박한 일을 겪고 있는 것 같았고, 언니는 자신의 차를 타고 가라며 호텔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언니가 타라는 차는 운전기사가 모는 커다란 이었다. 옛날에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던 그런 높은 차 말이다. 언니, 연예인이라도 된 거야?라고 나는 물었다. 꿈에 언니 목소리만 들렸던 것인지, 언니가 직접 등장했던 것인지 아직도 모호하다. 그러다가 깼다.


사위는 깜깜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보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만, 삐-하는 소리가 오른쪽 귀에서 들리고 있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처럼. 아니면 전자파? 초음파? 그런 게 들릴 리가 없잖아. 근데 들린다. 분명히. 지속적으로.

별안간 돌고래처럼 인간의 가청범위 너머의 주파수를 듣는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 밑으로 손을 뻗어서 멀티탭의 주황색 버튼을 눌러 전원을 꺼보았다. 삐이- 소리는 여전히 선명했다.


아, 이게 바로 아빠가 말하던 이명인 건가.

나의 아빠 생애 전반에 각종 건강 질환을 다층적으로 겪어 온 사람이다. 년 전에 아빠가 이명 때문에 이 병원 저 병원을 수차례 다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땐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일이었다.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요? 무슨 소리가 어떻게 나는 거예요? 신기하네- 했었다.

나는 폰을 열어 이명을 검색해 보았다. 새벽 3시 45분이었다.


정의
이명이란 외부에서의 소리 자극 없이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이상 음감을 말한다. 즉, 외부로부터의 청각적인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상태이다. 완전히 방음된 조용한 방에서는 모든 사람의 약 95%가 20dB(데시벨) 이하의 이명을 느끼지만 이는 임상적으로 이명이라고 하지 않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정도의 잡음이 느껴질 때를 이명이라고 한다.

원인
이명의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가 71%, 원인불명인 경우는 29%이며, 추정가능한 원인은 내이 질환 20%, 소음 15%, 두경부 외상 13%, 외이염 및 중이염 7%, 약물 6%, 상기도염 3%, 스트레스 3%, 피로 1% 순이다.
이명의 발생부위에 따라 청각기 주위의 혈관계와 근육계의 병변, 청각경로인 감각신경성 청각기의 병변(내이성 병변, 청신경성 병변, 중추성 병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명의 병태생리는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증상
청각적 자극 없이 지속적인 소리를 듣게 된다.


음. 이비인후과에 가봐야 할까.


계속 검색해 보다가 '청력기관의 노화'라는 말과, 글 말미에 '6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라는 부분에서 멈칫했다.


나는 아직 60대가 되려면 아직 20년이 남았지만 노화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게 겪는 것이므로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일까. 마치 내가 또래보다 새치 염색을 일찍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에 선배교사들과의 모임에서 비문증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것도 떠오른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언니가 '요즘 책 읽을 때 눈앞에 뭔가 하얀 게 떠다니는 것 같다'라고 하자 그 옆에 앉아있던 언니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거 비문증이잖아. 나도 얼마 전부터 겪고 있어. 다 노화지 뭐. 걱정 마, 숙해진다.'



갑자기 심란해져서 검색을 중단하고 습관처럼 블로그에 들어갔다.

친구가 몇 시간 전 올린 글이 보였다. 캔맥주 사진과 함께 써 올린 육퇴 후 일기였다. 대한민국에서 자녀 둘을 키우는 맞벌이 육아맘의 고단함이 활자를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유독 출장이 잦은 그녀의 남편 또 부재중인 듯했다. 음쓰를 버리러 나왔다가 편의점에 들러 4캔에 만원 하는 맥주를 사들고 와서 마시다가 울었다는 문장이 짠했다. 



삐-

이명은 여전하다. 하지만 다른 것에 집중하는 동안 잊히는 것도 같다. 상의 단함도 이명의 고통 다 잊고 싶서 귀를 틀어막아 본다. 그러다 문득 최근에 읽은 것이 떠오른다. 한병철선생님은 <고통 없는 사회>에서 모든 진실은 고통스럽다 했다. 고통은 인간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고 오직 살아있는 관계 만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생생히 살아있는 것인가.


창밖으로 날이 밝아온다. 늘은 모처럼 아빠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이제 나도 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건 좋은 일인 것도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을 보려고(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