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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Oct 23. 2023

가을을 보려고(2)

구례, 이틀 째.


아침에는 숙소의 잔디마당에서 요가를 했다. 우리는 둘 다 요가를 사랑한다. Y의 직업은 요가 선생님이우리가 처음 만나게 게 된 계기 요가 수업이었다. 


잔디밭에 매트를 깔고 올라섰더니 그 푹신거려서 조금 휘청거렸다. 파스치모타나 아사나를 시작으로 몸을  30여 분 가량 움직였다. 주위의 고요함과 깨끗한 공기가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매트 위에 누우니 하늘의 구름이 시시각각 흘러가며 모양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하늘과 구름은 어쩜 이런 색일까. 밖에서 하는 요가는 더없이 생생다. 야외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감사한 계절. 가을의 한가운데에 지금 내가 존재했다.



우리는 산을 오르기 위한 착장을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지리산 노고단에 가기 위해서였다. 성삼재 주차장을 향해 차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 랐다. 차에서 내리니 기온이 섭씨 5도였다. 나는 차가운 공기에 화들짝 놀라서 옷을 한 겹 더 껴입었다. 글로브박스를 뒤져서 작년 겨울에 넣어둔 핫찾아서 챙겼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2-3시간이면 충분히 왕복 가능한 산길이다. 길도 험하지 않아 어른 손잡고 온 어린이 등산객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다다다 뛰어가는 걸 보고 집에 두고 온 나의 보리와 담이가 생각났다. 사실 간밤에악몽을 었다. 아이들이 어딘가로 사라져서 사방팔방 찾아 헤매는 꿈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을 번쩍 뜨면서 잠에서 깨서는 상황을 인지하고 크게 안도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꿈이라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되뇌었다. 겉으로는 순도 100프로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내면 깊은 곳에모종의 불안감과 그리움이 깔려 있었던 걸까.



에는 단풍을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가자며 심호흡을 하며 씩씩하게 걸음을 디뎠다. 중간고개에 다다르자 미리 산행을 예약할 때 받은 QR코드를 제시하고 입장하는 게이트가 나왔다. 이제 진짜 노고단으로 가는 거야. 설레는 마음과 달리 날씨는 잔뜩 흐렸다. 군데군데 산안개가 짙게 껴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구간들이 있었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들이 바람에 실려왔다가기를 반복했다. 해발 1500m.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이 일정치 않은 방향으로 마구 날렸다. 춥고 손 시리고 콧물이 나왔다.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추위에 못 이겨 대충 사진을 찍고 급히 하산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지리산 국립공원 측에서 제공하는 '내 도시락을 부탁해'라는 서비스를 보았다. 말 그대로 등산객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행사인데, 원칙적으로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지만 분이 남았다는 말을 듣고 즉시 입금 하 마지막으로 2개의 도시락을 받을 수 있었다. 등산로 바로 옆 임시 취사장에 들어가서 도시락을 맛나게 먹었다. 날씨가 차서 국은 식어있었지만 연잎밥과 과일, 초콜릿까지 야무지게 구성되어 있는 식사였다. 에서 이런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니, 감사했다. 으로도 국립공원에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용해야겠다.



원래는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이미 도시락을 먹었으므로 우리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섬진강 책사랑방>이라는 북카페였다. 박 업소였던 건물을 수리해서 서점 겸 카페로 쓰고 있는 이 공간은 사뭇 특별했다. 어릴 적 자주 가던 부산 보수동헌책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오래된 책들이 1층에서 3층까지 빼곡했다. 3층에 올라갔더니 각종 전공서적이 쌓여있었다. 그 속에서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전공과목 교재를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 책을 쓰시고 수업하셨던 교수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고, 수업 들으며 졸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이 책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 서점에 있는 책을 다 보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나는 이 공간에 몇 시간이고 머물면서 책 목록을 낱낱이 살피고 싶었다.


산수유 차를 앞에 놓고 김현 시인의 산문집을 읽다가,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을 읽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테이블에 머리를 대고 잠깐 잤다. 북카페에 등산복 차림으로 와서 낮잠을 자다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어쨌든 깊은 단잠이었다.



허기가 진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하러 갔다. 어제 소품샵 사장님이 알려준 또 다른 현지인 맛집, <상남치즈>였다. 치즈를 배우러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셨다는 치즈 장인이 운영하시는 곳답게 과연 음식에 들어간 치즈맛이 일품이었다. 우리는 돈가스 소스까지 삭삭 긁어먹었다.



집으로 돌아기기 전. 맛있다는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어제 먹었던 더덕 막걸리와 다슬기 파전포장 주문 해서 차에 실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는 파전 냄새가 진동했다. 그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또다시 3시간 동안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서로를 마음 깊이 공감하는 동안 밤 10시가 넘었다.


 에 돌아오니 남편이 애들을 재워놓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 없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엄마 집에 1박 2일 다녀왔다. 우들과 또래인 내 카들이 온다기에 공동육아를 할 겸 간 것이었다. 에게 수고했다며 막걸리와 파전을 펼쳐주여행이야기도 함께 펼쳤다. 남편은 막걸리를 마시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다음에 구례에, 이 식당에 함께 가보기로 했다.


침대에서 곤히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오늘따라 유독 더 귀엽다.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과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느끼며, 나는 산처럼 쌓인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었다. 오늘밤에 치워도 내일 아침에 다시 어지럽혀질 집을 청소하며 익숙함이 주는 소중함을 생각했다. 자꾸 인생을 풀려고 하지말고 안아줘버리자. 너그러움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다가올 날들을 다정히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을 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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