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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Dec 06. 2023

갈치를 구우며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울다

퇴근길에 갈치를 사러 시장에 갔다. 두 마리 2만 원인 것이 떨이로 1만 6천 원이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빤딱거리는 앞치마를  사장님이 생선피가 묻은 칼을 들고 우렁차게 물으셨다.


-어떻게 드실 거예요? 구이? 소금 칠까요?

-네, 구이요!


사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사장님, 이거 오늘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나머지는 얼릴 건데, 씻어서 냉동해요? 아니면 그대로 냉동해요?


갈치를 토막 내던 사장님이 고개 들어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대답했다.

-8시간 후에 씻어서 냉동하세요~ 이대로 얼리면 나중에  짜서 못 먹어요.


렇다면 지금 당장 먹을 건 바로 씻어서 구우면 되는 건가? 그럼 싱거워지는 거 아닌가? 구울 때 소금을 쳐야 하나?


더 묻고 싶었지만 바쁜 사장님을 귀찮게 할까 봐 그만두고 귀가했다. 주차난이 심각한 시장 골목에서 빠져나오느라 40분 넘게 걸렸다.




내가 어릴 적, 엄마가 저녁 반찬으로 생선을 굽는 날이면 나는 또 생선이냐며, 온 집안에 비린내가 난다며 코를 틀어쥐고 유난을 떨었다. 그러고는 엄마가 발라주는 생선살을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스스로 발라먹을 만큼 생선 요리를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부끄럽게도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생선 발라먹기에 서툴다.



내손으로 생선을 사서 내 집에서 직접 그것을 굽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생선구이는 입 짧은 내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집안에 생선 냄새가 진동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해 줄 수 있다면야. 자식 부모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비비고'사社 생선구이 제품(에어프라이어에 5분만 데우면 되는 간편식)을 애용해 왔다. 하지만 아이들의 식사량은 어났 제품의 가격은 퍽 비다. 생활비 절감을 실천 중인 나는 처음으로 시장에서 생물을 구입여 직접 요리해 보기로 했다. 간편식 제품과 비교하니 과연 저렴하고 신선했다



하지만 굽는 일은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물기 뺀 생선 올렸는데 팬 뚜껑을 찾아 헤매는 사이에 기름이 어찌나 튀는지, 손가락에 이어 발가락에까지 경미한 화상을 입었다. 나의 악! 비명 소리에 방에서 숙제하던 보리가 튀어나왔다. 보리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꺼내서 내 손발에 갖다 댔다. 요전에 자신이 뜨거운 걸 만졌을 때 제 아빠가 자신에게 해줬던 걸 그대로 답습하는 기특한 딸이었다.  어여쁜 아이를 보니 어서 맛있는 생선구이를 완성해서 먹이고 싶어졌다.



엄마가 만들어 준 겉바속촉 갈치구이를 떠올리며 가스레인지 앞에서 고군분투했건만, 결과물은 크게 달랐다. 생선을 수차례 뒤집는 동안 은빛 껍질은 해진 옷처럼 벗겨졌고, 겉은 바삭하긴커녕 눅진눅진했다. 그래도 익긴 익었다며 위안하며 먹어보니 다행히 맛은 훌륭했다. 약간 싱거웠지만. 



갈치 네 토막을 구웠는데 아이들이 1인 2토막씩 먹어치우는 바람에 나와 남편은 먹을 것이 없었다. 냉동실에 들어가기로 되어있던 나머지 토막들을 꺼내 2차로 구웠다. 두 번째 갈치구이는 주 뒤집지 않았고 불조절 신경 써서 나름 성공적이었다. 다음 주말에 엄마집에 가면 자랑해야겠다. 내가 손수 생선구이를 했다고!


나는 언제쯤 엄마처럼 완벽한 생선구이를 만들 수 있을까.




<H마트에서 울다>는 소설처럼 읽히는 책이지만 픽션이 아니다.  빨간 책은 저자 미셸자우너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둘의 매개체인 한국 음식에 관한 생생 이야기이다. 미셸의 엄마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암말 진단을 받는다. 두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어마어마한 부작용에 고통받지만 병에는 전혀 차도가 없었다. 2014년, 스물다섯 살의 미셸은 그렇게 허망하게 엄마를 잃고 만다. 황과 감정에 관한 묘사가 실로 구체적이어서 마치 내 눈앞에서 엄마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듯 몹시 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울었다.



 성향이 크게 달라서 미셸사춘기 시절에는 심각한 갈등과 마찰은 모녀였지만, 성인이 되어 독립 딸은 뒤늦게 엄마의 랑과 헌신을 뼈저리게 이해하는 중이었다. 한국인이었던 엄마는 생전에 어린 미셸을 데리고 1,2년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서울을 방문했었다. 덕분에 미셸은 한국 문화와 음식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엄마가 죽은 뒤, 엄마의 흔적으로 가득한 집에 슬픔에 빠진 미셸은 느날 요리를 한다. 엄마를 떠올리며. 한인마트에 가서 엄마가 사던 제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 헤맨다. 그녀는 엄마가 자신에게 만들어주었던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 과정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승화하고, 엄마를 마음 깊이 애도한다. 리고 진정으로 성장해 나간다.




엄마가 만들던 요리를 따라서 만드는 날들이 잦아진다.

이를테면 양배추찜 같은 것. 쪄서 야들야들해진 양배추 한 겹을 손바닥에 올리고 그 위에 흰쌀밥을 올려 액젓 베이스의 양념장을 곁들여 싸 먹는 건, 내가 어릴 적 가장 싫어하 반찬중 하나였(정말이지 지독하게 편식하는 어린이였다). 양배추를 찔 때 나던 쿰쿰한 냄새도  싫어했다(여러모로 예민한 아이가 아닐 수 없었다. 엄마가 이런 애를 키우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 그런 내가 서른 중반이 된 어느 날 삶은 양배추의 달큰한 맛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종종 찜기에 양배추를 올린다. 마흔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생선도 구웠다(바로 오늘!). 매끼 식사 때 엄마김치를 꺼내 먹으면서 종종 생각한다.  김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나중에 엄마가 없으면 더 이상 못 먹는 건가. 안되는데..! 그 생각만으로도 슬픔이 꾸역꾸역 북받쳐온다.



어떤 음식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다. 음식은 한 사람의 문화와 정서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우리는 누구나 유년시절에 먹었던 것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귀하든 흔하든 값비싼 것이든 싸구려이든 간에 말이다. 음식의 영양소가 몸속에서 피와 살이 되는 동안, 그 음식을 만들어준 이와 함께 먹었던 이들과 그걸 먹던 분위기와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의 마음이 되고 영혼이 된다고 믿는다.



조만간 시장에 또 가야겠다.

이번에는 고등어 생물을 사서 노릇노릇 구워봐야지. 요즘 제철인 달디단 시금치도 한단 사 와서 엄마가 하는 것처럼 참기름 넣고 무쳐봐야지. 그리고 올해는 기필코 엄마가 김장할 때 옆에서 레시피를 적어놓으리라. 아니, 아예 동영상으로 찍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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