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다친 이후로 꼬박 2주 동안 요가를 못했다.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져 며칠을 보낸 후 나는 예상치 못하게 행복해졌다. 매일 아침 요가원에 가던 시간에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이번 생은 처음이라> 다시 보기를 하였으니, 컴컴한 방에서 혼자 울고 웃으며 아주 그냥 푹 빠져 즐겼다.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 한갓지게 침실에 드러누워 좋아하는 드라마 정주행을 하다니. 설거지가 쌓이고 빨랫감이 넘쳐나고 먼지 덩어리가 나뒹굴어도 허리부상자는 집안일을 할 수 없었으니,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 바깥일 하랴 집안일하랴 고생한 남편에겐 미안했지만 아픈 김에 불가피하게 푹 쉬었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인가 보다.
요가 지도자 과정 수업은 매주 토요일 약 4시간 동안 진행된다. 지난주 토요일 수업이 연휴로 인한 휴강이었으므로 오늘은 두 차시 분량의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허리가 많이 좋아져서 가벼운 수련을 할 수 있었다. 수리야나마스까르를 반복하며 굳었던 몸에 에너지가 순환되는 것을 느꼈다. 막혀있는 줄 몰랐던 호흡이 서서히 뚫렸고, 깊은숨이 내 몸을 돌며 구석구석 좋은 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수련 초반에 '또 다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요추 주변 근육의 긴장이 서서히 이완되었다. 치유되고 있다는 기쁨, 내 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감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양손으로 발가락을 잡고 상체를 숙이는 단순한 자세인 파스치모타나 아사나를 하며 그 어느 때보다 척추와 요추 감각에 집중했다. 안전함을 느끼고 용기를 얻어 마지막 시퀀스인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까지 잠시 유지할 수 있었다. 사바아사나를 하는 동안 바닥에 누워 충만한 평온감을 느꼈다. 마음속 흙탕물의 흙이 바닥으로 모두 가라앉아 투명해진 기분이랄까. 수련 후 5분간 앉아서 명상을 하는 동안 투명해진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이 명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론 수업에 앞서 원장선생님이 시험 일정과 방법, 과제물 등을 안내하셨다. 이론 시험, 실습 시험은 예상한 대로였지만 여러 가지 '제출물' 중 다소 당황스러운 것이 있었다. 향후 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제출하라는 것인데 뒤에서부터 즉 60년 뒤, 55년 뒤, 50년 뒤... 5년, 3년, 1년 뒤의 내가 하고 있을 일을 년, 월, 날짜, 요일까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오라는 거였다. 60년 뒤면 내가 100세인데.. 음.. 그때 내가 무얼 하고 있을까? 막막하고도 막연하다. 살아는 있을까? 살아있다면 뭐 하고 있을까? 누구랑 어디서 살고 있을까? 살면서 한 번도 구체적으로 해보지 않았던 생각들을 천천히 해보아야 한다.
즉 이제부터 요가의 시작이다라고 시작한다. 이 경구의 의미는 '요가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것. 요가와 인연이 닿았다는 것은 '나의 내면으로 향하겠다'라는 것을 뜻한다. 자신에게 완전히 집중한 자만이 수행을 시작할 수 있고, 수행은 곧 행복이다. 요가와 만났다는 건 쉽지 않은 귀한 인연이로되, 어떤 삶을 살아왔건 지금부터 삶의 좋은 성장 기회로 삼아 많이 성장하라는 메시지.
요가를 한다 -> 자신으로 향한다 라니. 멋지지 아니한가! 이런 말은 전혀 모르고 요가를 해왔는데, 어째서 요가를 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비로소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요가하러 가는 길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화냈다가 연민하기를 반복하는 나. 내 삶의 화두가 '나'인 사람. 나 같은 사람은 요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요가수트라 제1장 2절은 무척 중요하다. (이론 시험 문제이기도 하다)
Yoga's Chitta vrtti nirodhah.
요가즈 치타 브르티 니로다
요가는 마음 작용의 지멸이다.
우리말 어순대로 chitta가 마음 혹은 정신,
vrtti 작용, 변화, 동요,
nirodhah 억제, 멈춤을 의미한다.
마음(chitta)이 작용하면 괴롭고 마음이 멈추면 행복하다. 여기서 마음이라 함은 세 가지를 일컫는다.
1. Buddi : 이성, 지성, 알아차림, 바라봄, 의식
2. Ahamkara : 자아, 에고, 나라는 캐릭터
3. Manas : 표면적 마음, 협의의 마음, 감각의 이미지화
흔히 1번 붓디를 이상적으로 보고 2번 아함까라를 에고 혹은 고집이라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데, 아함까라 또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캐릭터가 세고 자기의 주관이 강하다는 건 3차원의 세상을 잘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3독 즉 욕심, 편견, 분노가 일어나는 곳도 아함까라(에고)이다. 우리는 붓디를 통해 에고의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내 생각과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볼 수 있다. 붓디로 3독을 조절하여 지혜롭게 마음의 작용을 지멸시켜 평온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3독이 일어나는 과정에는 순서가 있다. 편견, 즉 치우친 생각이 욕심을 일으키고 욕심이 분노(화)를 일으킨다. 요가는 육체를 통해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 봄으로써 편견을 다스린다. 우리는 아사나(자세)를 할 때 오른쪽과 왼쪽을 끊임없이 살핀다. 내 골반이 한쪽으로 치우쳤는지 인식하고, 아사나를 한쪽과 안 한 쪽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차리며 균형감을 추구한다. 이 감각이 마음에 전해져서 내가 가진 편견을 알아볼 수 있다. 편견을 다스리면 욕심과 탐욕을 잠재울 수 있고, 나아가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다.
편견 없이, 욕심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없는 자극 속에서 그러기란 힘들겠지만, 내 마음이 동요할 때 그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조금 더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2교시
2교시는 지난 시간에 배웠던 차크라에 관한 복습이었다.
차크라는 우리 몸에 흐르는 생명에너지의 센터, 에너지의 발전소이다. 한방에서 말하는 기氣 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대 인도에서는 프라나(prana)라 불리는 우주의 생명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요가의 수도자는 명상이나 호흡법을 통해서 프라나를 조작한다고 여겨진다. 마음은 추상적이고 몸은 구체적이다. 즉, 추상적 마음을 작동시키기 위해 구체적 물질 수단인 신체(차크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체에는 약 88,000개의 차크라가 있는데, 그중 척추를 따라 두개골 최상부에 위치한 7개의 차크라가 핵심이다.
(아래부터 순서대로)
제1 차크라: 물라다라 차크라
뿌리 차크라라고도 하며 회음에 위치하며 우리가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근원적인 욕구와 본능(음식, 수면, 섹스, 생존)이 담겨있고 가장 강력한 잠재력인 쿤달리니 샥티가 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의천륜과 가족 등과 관련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고도 한다. 본능적 인간의 단계.
제2 차크라: 스와디스타나 차크라
성 차크라라고도 하며 꼬리뼈에 위치해 있다. 생식기나 욕망, 인간관계, 사교성과 관련 있으며 스와디스타나가 활성화되면 자가 치유 능력과 육체적 쾌락이 증가한다. 육체적 인간의 단계.
제3 차크라: 마니뿌라 차크라
보석 차크라라고도 하며 배꼽 뒤쪽에 위치한다. 소화기관과도 연관되어 있다. 마니뿌라가 깨어나면 내면에 힘이 생겨 자신감과 자존감이 상승한다. 트위스트 자세가 도움이 된다. 소유적 인간의 단계.
제4 차크라: 아나하타 차크라
사랑 차크라, 심장 차크라라고도 하며 가슴 중앙에 위치해 있다. 아래 세 개의 차크라, 즉 육체적 감각과 위 세 개의 차크라인 내면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중요한 위치. 아나히타가 열리면 조화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고 닫히면 걱정과 질투가 많아지고 민감해진다. 후굴자세가 도움이 된다. 감정과 사랑의 단계.
제5 차크라: 비슛디 차크라
목 차크라, 소통 차크라라고 하며 쇄골 정중앙 목에 위치한다. 비슛디의 에너지가 고갈되면 성대 결절, 갑상선 질환이 올 수 있다. 사람과의 대화, 세상과 소통이 어렵고 화가 난다. 쟁기 자세, 물고기 자세, 사르방가 아사나가 도움이 된다. 믿음과 부동심의 단계.
제6 차크라: 아갸(아즈나) 차크라
직관 차크라, 혹은 제3의 눈 이라고도 하며 양 눈썹 사이 미간에 위치한다. 아갸가 깨어나면 마음의 힘을 가지고 세상의 법칙을 알고 나를 사랑하며, 관찰의 힘으로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지성과 통찰력의 단계.
제7 차크라: 사하스라라 차크라
왕관 차크라라고도 하며 정수리에 위치한다. 나는 빛이고 사랑이고 현존이다, 전체는 하나다라는 깨달음으로 가는 관문이다. 머리서기가 도움이 된다. 통합적 완성의 단계.
선생님의 판서를 노트에 옮겨 쓰고 빠르게 지나가는 말을 받아적느라 오른손이 저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렇게 뭔가를 공부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살짝 뿌듯했다.
차크라에 관해 설명하는 것 또한 이론 시험 문제이므로 위의 용어와 특징들을 다 암기해야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낯설고 개념 또한 생소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요가적인 개념은 현대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서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기에 어려운 점 또한 있다.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종교가 없는 나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그러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론 따위가 아니니. 나는 그저 한평생 요가하는 사람이고 싶다.
좌식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니 허리가 아파왔다. 몇 걸음 걷자 괜찮아졌다. 밖으로 나오자 토요일 낮의 햇살이 따사로웠다. 허기가 졌다. 많이 배고픈데 뭔가 채워진 기분. 묘하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