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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r 17. 2024

똑같이 깨물어도 다르게 아픈걸

주말 아침부터 싸움이 일어났다.

담이는 언니가 자신의 향수병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내고 울었다. 바로 어제 방과 후 생명과학시간에 만든 소중한 아로마향수. 그걸 흔들어 섞으면 안에 든 투명한 액체가 탁한 색으로 변하는데, 언니가 힘차게 흔들어버린 거다.


-으아아와앙~~ 엄마~~~~ 언니가 내향수를 막 흔들어서 이르케 다 섞여버렸어 엉엉ㅜㅜ


저만치서 딴청 피우고 있는 보리를 보니 제동생이 싫어할 줄 알고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자매는 때때로 이런 식으로 서로를 괴롭다.


-언니는 왜 내 걸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만지는데~~~! 사과해 나한테. 미안해 백 번 해야 용서해 줄 거야!!

-너도 지난번에 내 보물상자 내 허락 없이 만졌잖아~~ 니가 먼저 사과해~~

-지난번에 언제 내가? 나는 기억 안 나!!

-그래? 그러면 나도 사과 안 해~

-으아아와앙~~~~ 엄마~~~ 언니 너무 나빠~~ㅠㅠㅠㅠㅠ


별 것 아닌 걸로 시작한 싸움이 이런 식으로 커진다. 분기탱천한 동생은 급기야 언니에게 다가가서 사과하라며 길을 막아섰고, 보리는 비키라며 담이의 어깨를 손으로 밀쳤다. 바닥에 밀쳐진 담이는 서럽게 울며 나에게 왔고 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요가하러 갈 준비를 하며 분주히 움직이던 나는 이런 상황이 다소 짜증스러웠다.


-보리야, 동생이 싫어하는 걸 왜 해? 안 하면 되잖아.

-그냥 한번 흔들어 본거야. 좀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어쨌건 애가 싫어하잖아. 그랬으면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이지 뭘 또 지난번 일을 들먹이고 그래.

-지난번에 담이가 내 거 그냥 만지고 몰래 가져간 거 엄마도 봤잖아요!! 그때 담이한테는 안 혼냈으면서, 엄마는 왜 만날 나한테만 그래요!?

-엄마가 뭘 너한테만 어쨌다고 그래! 이건 네가 분명 시작한 일이잖아, 동생한테 사과하고 다시 안 그럴게 하면 끝날 일을, 이렇게 만들어야 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멋진 언니라고 했잖아, 잊어버렸어?

-엄마는 담이한테는 그렇게 말 안 하고 맨날 안아주, 나한테는 맨날 사과하라고 하고... 으아아 앙~~~~~


씩씩거리며 나를 보던 보리는 끝내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안방에 있던 남편이 나와서 보리를 안았다. (이제 나오냐?)

-아이고 우리 보리가 많이 섭섭했구나, 아빠가 안아줄게.

아이 아빠는 첫째 딸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며 나에게 눈짓으로 그만두고 나가보라고 말했다.




그날의 요가수련과 명상은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격렬히 몸을 움직이고, 앉아서 명상하는 내내 아이들 생각뿐이었다. 자매가 한 살씩 더 먹으면서 싸움을 중재하는 것이 어렵고 난감할 때가 많다. 비폭력대화에서 '관찰-느낌-욕구-부탁'의 순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그렇게 배웠으면 뭘 하나. 실전에는 이토록 적용을 못한다. 패배자라며 자책하고 있는 나의 에고 발견했다. 고난도 아사나를 하는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엔 아침에 아이들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맨날 나한테만..


이런 말을 보리가 부쩍 자주 한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억울한 얼굴로. 그 말과 표정에서 어린 나를 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자주 품었던 감정이었다. 딸 딸 아들. 2녀 1남 중 나는 둘째 딸이었다. 막둥이 아들을 볼 때 유난히 반짝이던 내 엄마의 눈빛을 알아챈 건 내가 몇 살 때였던가. 엄마는 아들을 편애했다. 물론 본인은 부인할 테지만 나는 확실히 알았다. 대놓고 아들에게 더 좋은 걸 입히거나 먹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냥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남들 다 있는 아들, 나도 갖고 싶더라."



문제는 지금의 나다. 나는 담이가 너무, 너무 귀엽다.

첫째는 이름을 부르지만 둘째는 귀염둥이야 라고 부른다. 자매가 싸워도 둘째가 늘 안쓰럽다. 그 아이가 와앙-하고 울면 마음이 애닳아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다. 잠옷을 뒤집어 입는 것도, 입 벌리고 침 흘리며 자는 것도 그저 귀엽다. 8살이 된 둘째 얼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 때의 얼굴을 발견한다. 간혹 잠든 첫째를 들여다보며 '얘도 아기 때 얼굴이 있네..' 하는 빈도와는 비교도 안되게 자주 말이다. 보리는 기저귀 떼는 것부터 글자 익히기에 이르기까지 뭐든 빨랐고,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FM적으로 우수한 아이이다. 언젠가부터 그런 첫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반면,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에 글씨도 개발새발 쓰는 담이가 나는 랑스럽다. 그 엉망진창을 보며 '어쩜 이렇게 자유분방하지?' 하면서 감탄하기도 한다. 때로 담이의 귀여운 짓을 넋 놓고 보고 있을 어쩐지 뒤통수가 따가웠던 적이 있었다. 보리가 그런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다급히 내 표정과 눈빛을 수습하곤 했다.  



아홉 살밖에 안된 첫째를 아이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늘 '기특한 첫딸', '멋진 언니'라는 프레임으로 봐왔다. 불안감이 높아서 뭐든 열심히 해내는 노력을 '언니니까 그 정도는 해야지'로 당연시했고, '역시 너는 내 딸이구나'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보리가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첫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언젠가 출생 순서라는 환경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외동과 다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연히 다르지만, 같은 다자녀인 경우에도 아이들이 동성일 때와 이성일 때 부모의 양육태도는 또 달라진다고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는 무한한 새로움과 기대, 긴장감, 걱정이 따르는 반면, 동성인 아이가 또 태어나게 되면 부모는 익숙함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자녀에게 여유로움과 느긋함, 자유로운 정서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래서 보리는 우유부단한 완벽주의적 성향이고, 담이는 호불호가 분명하면서도 느긋한 걸까.


보리에게 멋진 언니 되기를 나도 모르게 주입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억압되고 서러웠겠지. 짠하다. 다만 부모로서 누구를 더 아끼고 누구를 덜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음이 조금 다르게 작용하는 것 같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을 테지만 분명 약간 다른 방식으로 아프달까. 나만 이런 건가..? 아이를 한 명 이상 키우는 부모님들께 솔직한 속내를 묻고 싶다.




어제도 보리는 하굣길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보물상자를 만들었어. 거기에 엄마 얼굴을 그려서 넣을 거야. 엄마는 내 보물이거든.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는 내 첫째. 너도 내 보물인데.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 들지 않게 해줘야지.

가끔 해왔지만 앞으로 더 자주 보리와 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셋이 함께 있을 때도 보리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고 읽어줘야지. 그러면 담이가 또 섭섭해하려나? 이것 참 어렵다. 브런치에 쓰는 육아이야기를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글 만큼은 예외가 될지도 모르겠다. 보리가 글을 읽으면 조금 속상할 테니. 나중에 비공개로 환할 1순위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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