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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Feb 28. 2022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책 리뷰


  김하나 작가의 글은 가독성이 훌륭하다. 톤은 무게 잡지 않은 채로 홀연히 웃기고, 내용은 유익하다. 책 속 문장들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시종일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흐르는 물이 돌멩이를 만나면 잠시 방향이 바뀌지만 이내 원래의 궤적을 되찾듯, 작가의 글도 결국 하려던 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보면, 그저 재밌게 읽었을 뿐인데 종국엔 자기 계발서에서 얻을 법한 교훈이나 깨달은 같은 것을 얻곤 한다. <힘 빼기의 기술>,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좋았다.

  무엇보다 이 분은 꼬인 데 없이 가지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것 같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책에 드러난 가정환경이나 부모님과의 일화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듯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작가의 어머니께서 정성껏 쓴 육아일기를 성인이 된 작가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부분이었다. 정말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엿본 저자의 성정은 섬세하고 정의로우며, 사고는 유연하고 열려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게다가 자신이 알게 된 좋은 것을 남에게 전달해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진다.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고 나서 목소리가 궁금해서 팟캐스트(책읽아웃)를 통해 처음으로 작가의 음성을 접했다. (연예인은 직접 만난 듯 혼자서 몹시 반가웠다.) 말하기 영역을 강조한 책의 저자답게 말의 속도, 성량, 딕션부터 피시(Policical Correctness)함, 유머감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적절했다. 예의 바르게 간접적으로 본인의 주장을 설파하는,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 또한 무척 설득력 있었다. 이 분이 교사였다면 수많은 학생들에게 참 좋은 선생님이었을 것 같다 생각을 내내 했다.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이 와닿았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설적이게도 ‘침묵에 대하여’라는 챕터였다. 말하기를 말하기에서 침묵 예찬이 나오다니.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침묵의 힘을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내다니. 그렇다, 침묵은 종종 말보다 더 힘이 세다.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은 말로 담아낼 수 없기에 찾아온다. 의미와 경계, 한 줌 언어의 납작한 정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침묵이 촘촘히 들어찬다. 저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 침묵은 마침내 흐르기 시작한다. 가끔 마주치는 눈빛, 작은 한숨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지 않고 흐르는 침묵은 대화의 완벽하고 더 차원 높은 연장이다. 침묵은 상상하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침묵은 공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좋은 침묵은 각자를 고독 속에 따로 가두지 않는다. 우리는 침묵에 함께 몸을 담근 채 서로 연결된다. 동시에 침묵함으로써 비로소 서로를 듣는다. 침묵 속에서 고독은 용해된다. 짧게나마 완벽한 침묵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은빛 실핏줄로 이어져 있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 누군가 했던 말은 기억 속에 새겨지지만 우리가 나눈 침묵은 심장에 새겨진다.
P.169

  말은 베고 부수고 찌를 수 있고 또한 적시고 스미고 이끌 수도 있다. 때로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으로 침투해 영원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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