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리고, 스물두 명이 한 방향으로 앉아있는 공간에 입장하여 그들 앞에 선다. 마흔 개가 넘는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한다. 초조함과 불안, 떨림과 설렘 등 복합적인 기분을 애써 은폐하며, 그들을 위해 준비해 온 말들을 차곡차곡 내어놓는다.
교탁 앞에 서는 일은 지금부터 무수히 반복될 것이므로 곧 적응될 테지만, 여전히 자연스럽지가 않다. 3월, 학기초에 겪는 이 강도 높은 긴장감과 낯가림은 학생일 때나 교사일 때나 변함이 없다. 분명 작년 2학기 말까지 이 교실에서 기계처럼 수업했는데, 겨울방학 동안 그 기계는 초기화되어버린 듯하다. 올해의 경우 내 전담 학년 학생들과 초면이라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개학을 하루 앞두고 확진가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늦게 나타난 것이다.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송구하고 미안해서 퍽 위축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대부분 너그럽고 따뜻하게 나를 걱정하며 맞아주었고, 무척 고마웠다. 처음 대면한 나의 반 학생들은 대체로 무뚝뚝했는데, 다른 과목 선생님들에게 듣기로 '담임쌤이 오니 너무 좋다' 고 했다고 한다. 단톡방에서도 열성을 다하던 우리 반 임시 반장은 직접 대면해보니 생각보다 더 믿음직스러웠고, 대다수 급우들의 지지를 얻어 정식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무려 6년 만에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출산 및 육아'와 연관된 것들이 산재한다. 내 어린아이들을 챙기느라 학교에서는 몇 년간 비담임이었고, 내게 소속된 학생이 없었다. 모든 교사에게 1순위는 수업이지만 그 외의 업무는 담임 학급 유무에 따라 결이 달라진다. 담임은 학생 생활 전반과 밀접하기에 업무불확실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비담임은 대체로 과중한 행정업무를 맡는데, 그게 형평성 차원에서 맞긴 하다.
우리 반 스물두 명 학생들의 사진 명렬표를 출력해서 내 책상에 붙여놓고 틈틈이 보면서 이름을 외운다. 이제부터 해야 할 '학급경영'이라는 말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무엇이든지 '경영'하는 일에는 자신 없는 편이다.) 그들이 한 공간에서 매일 8시간을 공유하며 안전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기를. 내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남이 고통을 겪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공존하기를 소망한다,
반장선거를 하고, 청소구역을 정하고, 도우미 역할을 모두 하나씩 맡았다. 한 명씩 일대일 상담을 해나가면서 서서히 낯을 익혀가는 중이다. 반복되는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맺으며, 그렇게 우리는 비슷한 빛깔로 물들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