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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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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r 26. 2022

올해 첫 모의고사

학교 일상

3월 모의고사의 시험감독.


재적 21명. 결시 8명. 응시 13명.

결시 사유는 코로나19 확진 혹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창문으로는 봄햇살이 쏟아지고, 그렇지 않아도 넓은 이 교실은 오늘 유난히 한산하다. 수십 년 전 지어진 이 건물의 한 교실에는 한 때 책걸상이 50개 이상 놓여 있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의 절반도 되지 않는 인원이 널찍널찍 띄엄띄엄 앉아있다. 시국에 맞게 거리두기가 잘 실천되는 환경이긴 하다.


  2교시 수학 영역 시간은 무려 100분이다.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은 S는 마치 불패의 전사가 적과 싸우 듯 수학 문제를 푸는 중이다. 내 눈에는 제3세계 언어처럼 보이는 수학 기호들과 공식을 쉴 새 없이 써 내려가는 그의 손. 현란해서 경이로울 정도이다. 뭔가에 몰입한 사람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는데, 그 대상이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일 때 더욱 그렇다. S는 거침없이 답을 체크하며 전진하는 듯하더니 12번 문제에서 멈춘다. 난제에 봉착한 것인가. 분주하게 공식을 써 내려가면서도 정작 답을 못 찾는 듯. 오른손에 쥔 샤프펜슬을 반복적으로 돌려대는 모습이 초조하다. 장장 20분 정도를 그 문제와 씨름하더니 마침내 답을 도출한 것 같다. 그가 시험지를 넘기자, 내 마음도 비로소 좀 이완된다. 모의고사일 뿐이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이 아이의 평소 모습을 알고 있기에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시간이 떠오른다.

  나도 지금 S처럼 맨 앞에 앉아서 국어문제(당시 언어영역)를 풀고 있었다. 감독으로 들어오셨던 내 담임선생님은 교탁에 걸터앉아서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 손에 들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하얀색 표지와 창가에 나부끼던 하얀색 커튼, 그리고 책장을 넘기던 선생님의 하얀 손가락. 기억 속에서 포착된 그림 같은 그 장면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아, 나도 이 국어 문학/비문학 지문 같은 거 말고 소설책 읽고 싶다. 쌤은 진짜 좋겠다..'

  나는 그날 모의고사가 끝나고 곧바로 박완서 작가의 그 책을 사서 읽었다.


  점심시간 후 3교시는 영어 영역이다. 내 과목이기도 하고, 이번 중간고사 범위로 다룰 예정이라 심기일전하고 함께 풀어본다. 그러길 잠시. 일곱 문제 정도 풀었나. 집중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하고 있다. 이토록 지루할 수가 없다. 아, 나에게는 이제 19세 때의 그 절박함이 없구나..


  온종일 한 자리에 붙박힌 듯 앉아서 두뇌를 풀가동해가며 수많은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건  대단히 고된 일이다. 오늘 3모에 최선을 다한 모든 고등학생들이 남은 하루 동안 느슨하고 편안한 마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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