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문장들
행복은 유한한 삶에서 겪는 무한의 새로운 경험이다. 행복은 기쁨이고 발견이며 향유다. 그것은 정서적 충만으로 겪는 긍정의 순환이고, 깨지지 않는 지복에의 굳건한 믿음이다. 행복은 대상을 향유하는 것이다. 찰나에서 영원을 보고, 그 불가능의 가능성을 엿보는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행복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의 향유다.
P.194
우리는 어린 시절보다 어른이 된 뒤 더 불행해졌다. 어렸을 때 우리는 작은 놀이나 성취에 기뻐하고 행복에 겨워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행복해지는 법을 잊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나이가 들면서 행복에의 재능이 고갈되고, 행복보다 불행을 빚는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현실과 욕망 사이의 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자주 그 균형 잡기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p.78
관조는 대상을 넘어, 대상과 연관된 자아의 협소한 영역을 넘어 우리를 저 멀리로 데려간다. 자아가 손을 뻗쳐 만질 수 있는 좁은 영역의 속박에서 벗어나 저 먼 추상과 무한으로 나아가게 이끈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의 표면적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내재된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관조의 찰나, 자아는 미적 쾌감과 더불어 그 경계를 확장하며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날들이 아무 관조 없이 욕구와 즉물적인 응답만으로 이루어진다면 거기에는 기쁨이 깃들 수 없다.
P.207
독서란 침묵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청 행위다. 그것은 책이 베푸는 침묵의 향연으로 몸을 밀어 넣어 섞고 스미며 상호 침투하는 과정이다. 독서는 내면의 불안과 혼돈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려고 할 때 그 유용성이 빛난다. 독서란 침묵의 밀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바꾸는 행위다.
침묵은 자연 상태에 항상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일깨우는 것은 소리다. 침묵은 자연의 것이고, 소음은 도시의 현상이다. 소음은 침묵을 공격하고 그것을 부서뜨린다. 소음은 침묵의 살해자다. 차라리 소음은 침묵이 부스러진 것, 침묵의 잔해물이다. 자연에서 침묵은 스스로를 평정하고 스스로 태어난다. 자연 상태에서 깨어난 침묵이 젖을 물려 기르는 것은 소리들이다.
침묵은 소리들을 제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로 부양한다. 소리들은 침묵에서 멀리 나갔다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침묵과 소리는 혈연관계다. 소리가 침묵과 대조를 이룰 때 침묵의 명예와 위엄은 더욱 돋보인다. 침묵은 소리와 소리 사이에 머무는 신성한 파동이다. 세상에 떠도는 모든 소리는 침묵 속에 들어갔다 나옴으로써 비로소 정화될 수가 있다.
도서관, 수도원, 빈 들, 사막은 침묵으로 깊어지는 공간이다. 침묵은 부재하는 존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면서 공간을 더 넓게, 더 높게 만든다.
P.107
삶은 얼마나 짧고 비천하며 슬픈가! 불꽃은 아름답지만 곧 차갑게 식은 재로 변한다. 꽃은 화사하지만 이내 시들고, 달은 둥글게 차올라 빛나지만 곧 야윈다. 인생에서 아름다움은 금세 퇴색하고, 젊음은 빨리 지나가며, 모든 사랑은 시든 꽃이 지듯 사라진다. 곁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던 친구도 언젠가는 떠난다. 우리는 혼자 남아 자기 삶을 견뎌야만 한다. 삶은 행복보다는 견뎌야 할 것, 늘 초극(超)을 재촉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 삶을 직조하는 씨실과 날실은 불행과 슬픔이다. 우리는 늘 삶이 펼쳐 놓는 비극과 불행에 맞서 싸운다. 그 싸움에 이겨야만 행복은 겨우 한 줌의 안식으로 다가올 뿐이다.
P.286
행복한 이들은 늘 고요하고 여유가 있다. 그들의 마음은 감사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불행한 이들은 근엄하고 냉소적이다. 그들의 마음은 복잡하고, 까칠하며,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다. 행복한 이들은 행복의 강박증에 눌리지 않고, 그저 어리석음과 유행을 좇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 무엇을 더하는 대신 덜어내려고 애쓴다. "좋은 삶은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멍청함이나 어리석음, 유행 따르기를 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 절제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들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한다. 내재적 가치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우정과 사랑, 충만한 자아, 영혼의 성장, 가족에게 느끼는 친밀함,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의 좋은 관계와 밀접한 그 무엇이다.
P.193
혼자만 불행을 회피하려고 전전긍긍하고, 혼자만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 고투하는 것은 비루한 짓이다. 먼 곳에서 사는 이들의 고난과 고통을 품고 함께 아파해야 한다. 우리의 안락한 잠과 따뜻한 밥은 누군가 노동하고 수고한 대가다. 누군가 불행에 빠져 허덕인다면 우리는 그 책임의 일부를 나눠질 생각을 가져야 한다. 불의와 폭력에 눌리고 신음하는 사람들, 난민들과 이주 노동자들과 노숙자들이 겪는 고통과 불행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있어야만 한다. 마흐무드 다르위시라는 시인은 우리에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침밥을 먹을 때 휑한 눈으로 굶주린 채 망연자실한 사람들, 우리가 아늑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 창공의 별을 보며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는 여행자들과 집 없이 차가운 지하도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잠드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은 죄악일 뿐이다.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