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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y 09. 2022

아이들과 숲에 갔다

육아일기



  숲 해설사가 이끌어주는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해설사 선생님을 따라 산길을 걸었다. 선생님과 함께하니 걷다가 멈출 일이 많았다. 잠시 멈춰서 나뭇잎에 붙어있는 애벌레 알을 보았고,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살짝 당겨 꽃향기를 맡았다. 나무 밑 습습한 곳에 살아 숨 쉬는 이끼도 관찰했다. 아이들이 "선생님! 여기 벌레 있어요!" 하면 선생님은 친절히 그 벌레의 이름을 알려주다. 특이한 곤충은 돋보기가 달린 채집통에 담아서 아이들 자세히 관찰하게 해 주었다. 숲 해설사는 숲 전문가였다.

  산속의 공기는 풀냄새와 나무 냄새로 은은했다. 햇살은 따스했지만 나무 그늘은 선선해서 긴소매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산책로 근처에 사찰이 있는지 목탁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아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군요."

다리가 긴 곤충 한 마리를 재빨리 채집통에 넣고 뚜껑을 닫으며 선생님이 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둘째가 뒤에서 조용히 묻는다.

"엄마, 부처님은 언제 와? 부처님도 어버이라서 어버이날에 오는 거야?" 늘 그러듯 대답을 듣기도 전에 또 생각난 걸 묻는다.

"엄마, 근데 부처님이 누구야?"

  양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느라 오른쪽 어깨에 걸친 에코백이 자꾸 흘러내렸다. 주기적으로 둘째의 손을 놓고 가방끈을 끌어올려야 했다. 목이 마르고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잠시 멈추어서 뭔가를 관찰하는 틈에 생수병을 꺼내얼른 목을 축였다.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아왔는데. 산책 끝난 후 여유롭게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숲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로프로 엮어 만든 정글짐을 오르내리고 흔들거리는 출렁다리를 왔다 갔다 했다. "엄마 여기 봐! 나 여기까지 올라왔어!" 하며 연신 소리치고 까르르거린다. 먹는 일에 관심이 낮아서 체형이 퍽 마른 편인데도 두 여자아이는 신체활동에 과감하고 자신감이 높은 편이다. 눈앞에 나타난 것에 오롯이 몰입하여 감탄하고 만끽하는 아이들의 천진함은 숲에서도 빛을 발했다.



  숲 체험이 끝나고도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직 얼음이 찰랑거리는 아.아를 들이켰다. 카페인이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한 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잠시 읽었다.

  테이블에 냅킨을 대충 깔고 도시락을 펼친다. 도시락은 전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침식사로 먹고 남은 것을 밀폐용기에 담아온 것이다. 흰밥에 달걀찜을 끼얹어 떠먹으며 아이들이 맛있다를 연발한다.


"맨날 먹는 달걀찜인데,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먹은 건데? 맛있어?"
"밖에서 먹으니까 너~~~ 무 맛있어!"
캠핑 가서 내가 자주 하는 말 첫째가 그대로 따라한다. 내 몫은 김치볶음밥이다. 아침에 남편이 넉넉히 만들어준 걸 다 못 먹고 싸왔다. 원래도 맛있었지만 나와서 먹으니 역시나 2.5배 정도 맛있게 느껴지긴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들을 씻겼다. '목욕 끝!'을 선언하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욕조에서 첨벙거릴 어린이들. 야외활동이 길었던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피로를 풀어줘야 하기에 서둘러 목욕을  마무리한다. 머리가 긴 첫째를 먼저 말려주는 사이에 둘째가 양치질을 하다 말고 칫솔로 수챗구멍을 청소하듯 문지르고 있다. "제발, 안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칫솔은 입에만 넣는 거라고 또 일러주고, 새 칫솔을 꺼내서 건넸다.

  로 정수리에 코를 대고 샴푸냄새를 맡으며 다 같이 침대에 눕는다. <까마귀 형님>이라는 그림책을 한 권 읽은 후 불을 끈다. 씻는 걸 싫어하는 주인공에게 진짜 까마귀가 찾아와서 형님이라고 부르며 같이 노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석달 하고도 열흘' 이라는 표현이 '100밤' 자는 시간에 해당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 트윙클트윙클 리를 스타 한 번만 부르면 안 돼요?"

반짝반짝 작은 별은 잠들기 전 우리들의 루틴 중 하나이다.

"그래, 한 번만이야."


셋이서 함께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부 후  

"잘 자, 사랑해!"를 번갈아가며 경쟁하듯 말한다.

잠깐의 침묵이 있은 뒤 곧 가르릉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친밀한 순간들이 쌓였다. 우리는 풍요롭게 우리들의 시간을 살아냈다. 무탈하고 사소한 오늘 하루가 귀하다는 걸 기억하고 싶다.


주말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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