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낳고 키운 햇수가 어느새 7년이다. 육아의 한 복판에서 '부모 자식'이라는 광활하고 아득한 세계를 시시각각경험하는 중이다. 나의 자식을 보며 나의 부모가 느꼈을법한 감정을 헤아려본다. 가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될 때, 상념에 빠진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충분히 가까운 지인들에게 물었다. '부모'를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음.. 고맙다, 감사하다, 안쓰럽다, 슬프다, 답답하다, 애잔하다, 부담스럽다, 원망스럽다, 존경한다, 사랑한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머뭇거리며 시간을 들였고, 허공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느라 애썼다.
나의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보살피는 중이다. 엄마는 60대 중반이고 나의 할머니는 91살이다. 엄마에게는 남동생이 있는데, 그는 수년 전 모종의 사건 이후로 자신의 엄마에게 등을 돌렸다. 유일한 자식이 된 내 엄마는 홀로 사는 자신의 엄마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나이에 비해 건강했던 할머니는 최근 낙상으로 인해 급격히 쇠약해졌다. 혼자서는 운신이 힘들어졌고, 청력도 갈수록 악화되어서 전화 통화로는 의사소통도 어려워졌다. 엄마는 할머니를 더 자주 방문해야 했고, 그로 인한 피로감을 나에게 토로했다. 엄마는 많이 지쳐있었다. 자신의 엄마가 돌아가시면 이런 마음이 후회스러울 걸 알지만, 지금은 할머니를 돌보는 일이 너무 벅차고 힘에 부친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을 제안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 거부반응을 보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에 모시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 듯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고통에 공감했다. 그러다가 혹시, 나도 언젠가 엄마를 힘겨워하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아직 나는 엄마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움받는 처지이지만, 엄마가 더 늙고 병들면 그땐 지금의 엄마가 할머니에게 가지는 감정을 나도 느끼게 될까. 자기 부모에게 보다 자기 자식에게 더 마음을 쓰는 것은 본능일까. ‘내리사랑’이라는 말은뭔가 불공평하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내 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듯하다. 그들은 온통 나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한다. 엄마에게 더 사랑받으려고 자매가 서로 경쟁하고 시기하기도 한다.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하루에 100번도 넘게 하고, 끊임없이 안기고, 껴안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을 건다. 물론 나도 그들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한다. 그들의 말과 몸짓에 경이로운 행복감과 충만함을 느끼며, 그것을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곤 한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를 갈망할까. 십 대가 되고,성인이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서적 독립을 할 것이다. 정해진 에너지를 각자의 삶에 쏟다 보면, 부모를 향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 지점에서도 부모는 여전히 자식을 일방적으로 갈망할까.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할까. 이것은 과연 세상 모든 부모가 겪는 필연적인 과정일까.
아직 겪지 않은 일이라 내가 그 감정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지인들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들을보며 가늠해 볼 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8회에 등장하는 동석(이병헌)과 옥동(김혜자)의 모자관계에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다. 동석은 엄마로 인해 깊이 상처받았고 그녀를 증오하며 살아왔다. 세월이 흐른 지금, 옥동이 시한부 말기암환자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엄마를 외면한다. 그런 동석을 불러앉혀놓고, 그의 가까운 지인들이 '네가 인간이면 어머니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라며 비난하는 장면에서 나는 뭔가 불편했다.
이 세상에 모든 부모 자식 관계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존재할 텐데. 그 내밀한 관계에 '상식적으로'라는 접근법이 합당한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부모라면 이래야지.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라면 이래야지.'라는 사고는 모든 관계를 품지 못한다.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아무래도 내 자식과 내 부모만의 고유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어본다. 그건 아마 대단히 복합적이고 규명하기 어려운 영역일 것이다. 요전에 내가 지인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그들 모두 각자의 부모를 둘러싼 복잡한 감정을 이야기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