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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10. 2022

5일간의 입원 일기

대상포진 회복기


이동식 링거 거치대를 밀면서 1층 야외 병원 로비를 몇 바퀴 돌았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산책이다. 수백 번 넘 세탁해서 병원 로고가 희미 환자복을 입고, 링거 걸이를 끌며 달달 요란한 소음을 발생시키면서 꿋꿋하게 걸었다. 먹은 걸 잘 소화시키고, 다리도 좀 움직이고, 햇살을 받고 싶었다. 5일 동안 충실히 앓았다. 수액을 맞고, 매 식사 후 약을 한 움큼씩 삼키고, 수포를 소독하고. 이제 적당히 회복해서 곧 퇴원이다. 왼쪽 뺨과 목에 남은 수포 자국은 아직 선명해서 속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한다. 처방받은 항바이러스 연고를 열심히 발라야겠다.


로비를 빙글빙글 걸으면서 머릿돌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이 병원 건물은 무려 1980년에 지어진 것이었다. 어쩐지, 건물 내부는 많이 낡아있다. 화장실 정도만 리모델링 되어있고, 병실에 있는 가구와 소품들은 레트로 그 자체이다. 어느 정도냐하면, 환자 베드에 각도를 조절하는 리모컨이 없어서 등받이를 세우려면 침대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 손잡이를 잡고 열심히 돌려야 한다. 혼자 쓰게 된 2인실 병실에 누워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수많은 환자들이 앓으며 스쳐갔은 이 공간의 역사를 헤아려보았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몇 명이나 다녀갔을까. 그들에게 이곳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아득하다.


 Goldstar 전화기, 작동은 잘 되는듯 하다


오늘은 내 소중한 지인들이 나를 보기 위해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병원을 방문했다.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었거나, 현재 함께 근무 중인 나의 선배교사이다. 오전에 오신 분은 어제에 이어 오늘 또 방문하셨다. "요 근처에 약속 왔다가 너 심심할까 봐 또 들렀지~"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감동받아 울뻔했다. 반갑고 기쁘고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감개가 무량했다. 나는 원래 쉽게 감동하는 편인데, 몸이 쇠약해져서인지 감동이 더 격하게 밀려왔다. 평소에 매달 1회 독서모임에서 겨우 얼굴을 보곤 하는 우리는, 아픈 와중에 자주 만나니 이것은 참 좋고 기쁜 일이라며 서로 마주 보고 30분 동안 신나게 떠들었다. 오늘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배의 선물


반 아이들 생각을 매일 한다. 원래 계획상 오늘 6교시는 우리 반에서 다 같이 햄버거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미리 지출품의도 올려놓았는데, 내가 출근을 못해서 카드결제를 못하는 상황. 아쉬워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어젯밤에 우리 반 전원에게 콘 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을 전송했다. "오늘도 학교 갔다 오느라 공부하느라 수고했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냈데, 쿠폰을 받자마 아이들의 답장이 마구 밀려왔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동이에요... 어서 나으세요... 선생님이 없으니 너무 허전해요... 잘 먹겠습니다. 쾌차하십시오....'

단톡방에서는 몹시 무뚝뚝한 아이들인데, 개인 톡으로는 이토록 다정스럽다니, 심각하게 놀라웠다. 아이들의 톡에 하나하나 답을 하다 보니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두세 시간이 훌쩍 흘렀다. 사실, 교실에서는 내향적인 아이들과대화 부족하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아이스크림 쿠폰에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시간이 더 있다면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써주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평소에 내가 관찰했던 것과 해주고 싶던 말들을 요약해서 톡을 보냈다. '선생님이 이렇게 저를 생각해 주시는지 몰랐습니다, 감사해요'라는 진심 어린 말들이 우수수 돌아왔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깊은 농도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매일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핸드폰을 거의 쳐다보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서 학교에서의 퇴근 집이라는 일터로의 출근. 육아집안 일라는 거대한 일상에서 내가 잠시 벗어나 있다는 이 실감 나서 생소했다.




일상 내 컨디션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스스로 나의 에너지를 잘 나눠 써야 한다는 걸 안다. 눈앞에 닥친 학교 일정들과 집에 산적해있을 집안일을 떠올리면 직히,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과 나란히 일정한 속도로 러닝머신 위에서 뛰다가 나만 잠시 내려온 듯. 그리고 내일 다시 그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서 가열차게 뛰어야  상황 놓인 것 같다. 평소에 심신의 평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면서도, 나는 이토록 자주 스스로 무너지고 쉽게 고갈된다. 낙관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홀로 낯선 곳에 머물며, 머릿속을 떠다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구축해 온 세계, 지금 가 서 있는 곳, 나의 천성, 나의 욕망, 산다는 것의 본질, 내 직업의 쓸모, 인생의 모호함, 랑하는 사람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는 시간-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나에게 주어졌다는 걸 깨닫고삼 감사하고 기뻤다. 병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매일 뭔가를 썼다. 평소에는 쓰고 싶은 욕구가 들어도 행동할 시간과 여력이 없다. 에서는 주로 이들을 케어하느라, 락이 툭툭 끊기고, 문장 도저히 이어지지가 않는다. 내 노트북과 핸드폰 메모장에는 쓰다만 글들이 빨랫감처럼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져있다. 아무래도 나는 가를 쓸 때 내가  깊어지고 풍성해다고 느끼는 편인데, 그런 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기 머무르는 동안, 곳곳에 조각나 있던 각의 파편들을 끄집어 모아 본다.  

입원생활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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