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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17. 2022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방영되기도 전에, 예고편만 본 상태에서 나는 이미 설렜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단체로 출연하는 데다가 친애하는 노희경 작가님의 극본이라니!      


명실상부. 연기자들의 액팅은 역시 기대만큼 훌륭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정화되는 듯 너무 청량했다(짙은 제주도 방언이 처음에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적응되었다). 기존의 TV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옴니버스식 구성도 다양한 재미를 제공해주어서 신선했다. 보사노바 리듬의 ost도 블루스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감성적이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여러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눈물을 훔치면서 시청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몇몇 지점에서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의 근원을 찾고 싶어서 계속해서 생각했고, 이곳에 글로 남겨본다.      


1.

한수(차승원)와 은희(이정은)의 이야기. 한수는 딸의 성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 일하는 기러기 아빠이다.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등학교 첫사랑 동창에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설정은 아무래도 과하게 느껴졌다.     

은희 : 야. 너. 나를 뭘로 봔? 너 나를 친구로는 봔? 너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게. 이런 데 끌고 오지 말고. 잘 사는 마누라랑 별거네 이혼입네 그런 말을 한 순간 너는 나를 친구가 아닌 그냥 너한테 껄떡대는 그런 정신 빠진 푼수로 본 거야. 기지? 너는 내 감정을 이용한 거야. 기지?     

한수 : 그래.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고 싶었어. 우리 애 보람이. 나처럼 돈 때문에 지 꿈도 포기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 꿈 없이 살아가는 게 어떤 건지 난 아니까.     


‘꿈 없이 살아온’ 그 남자의 한의 정서가 전해져와서 잠시 멈칫하긴 했다. 하지만 잠시 후,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딸에게 한수는 이렇게 한탄한다.      


한수 : 왜 안 행복해. 야 임마! 야! 야, 아빠가 너 하나 행복하게 만들려고 지금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데 니가 안 행복하면 이 아빠는 어떻게 하냐...     


자식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한수는 생각해 보았을까. '내가 너를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애썼는데...' 라는 식의 서사는 자녀의 입장에서 ‘죄송하지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2.

고등학생 커플 현이와 영주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고려해 볼 점이 많다는 점에서 좋은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영주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당사자들이 현실적으로 걱정하는 내용들에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것과 더불어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것들의 무게감, 중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그들에게 더 신중히 주어져야 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영주에게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나는 경악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극의 맥락과 전개는 갑작스럽게 ‘생명존중’이라는 가치관을 최우선에 두고 아름답게 달리는 듯했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임신 중단)이 너무 쉽게 좌절되어 버렸고, 현이가 자퇴하고 ‘남자로서의 책임감’을 자처하는 모습이 이상적으로 그려져서 못내 아쉬웠다.     



3.

은희와 미란은 틈만 나면 ‘의리!’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명백 착취적인 관계다. 어린 시절, 부유했던 미란과 가난했던 은희는 분명 서로 호혜적인 것들을 주고받았다. (은희는 미란으로부터 도시락 제공 등 경제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고, 미란은 은희 덕분에 반 친구들과의 정서적 관계를 얻었다.) 하지만 간혹 미란은 은희에게 소위 말하는 '갑질'을 했다. 어린 은희는 미란이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반찬 투정을 했다가 ‘얻어먹는 주제에’라는 말을 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미란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친구’가 되는 일을 실제로 겪는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자극적인 장면을 먼저 보여준 뒤에 미란이 그런 행동들 이면의 사연이랄 것들이 묘사된다. 미란의 순탄치 않은 삶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헤아려보려고 해도, 그것이 친구를 함부로 대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란이 은희에게 사과하는 듯, "야 내가 이 세상에서 만만한 사람이 너 밖에 더 있냐?"라고 말하는데, 끝까지 저러나 싶었다.)


          



다소 강한 어조로 쓰긴 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극 중 관계에 ‘문제가 많다’든지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사회 체제 내에서든, 인간관계 내에서든 이처럼 기울어진 듯한 역학관계는 현실적으로 흔하다. 내가 불편한 마음을 느낀 건, 그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면 속상하고, 답답하고, 마음 아픈 그런 것들 말이다. 군가가 다른 누구를 위해서 (혹은 다른 가치를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주로 내가 감동받거나 희열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내가 평소에 추구해 온 것들이 극 속에서 구현되는 걸 발견할 때였다. 최근 종영된 또 다른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염미정과 구자경의 관계가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껍데기를 내던진 사람들의 진솔한 소통. 그런 인물이, 그런 관계가 현실에서 존재 가능한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상상 속에서 그리던 이상적인 것들을 시각적으로 펼쳐 보여 준다는 점에서 충분 위로이자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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