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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l 09. 2022

<순례 주택>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순례 주택은 김순례 씨(75세) 소유의 4층짜리 다세대 주택이다. 순례는 젊은 시절에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순례 씨의 집 땅값이 상승했고, 도로 건설로 인 보상금까지 받게 되어 그녀는 다세대 주택의 건물주가 되었다. 순례 노동을 통해 벌지 않은 돈이 왠지 자기 돈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세입자들로부터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 받기로 했다. 순례 주택에 입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줄을 서있고 늘 기회를 엿본다.


소설의 화자오수림(15세) 순례의 ‘최측근’이다. 이들의 관계는 다소 특이한데, 순례는 수림의 외할아버지20여 년간 연인 사이였다. 외조부는 몇 년 전 돌아가셨지만 수림과 순례는 여전히 돈독하다. 수림에게는 친부모와 친언니라는 ‘1군 가족’이 있지만, 어떤 사정으로 인해 외할아버지와 순례씨가 아기 수림이 실질적으로 키웠다. 그러한 연유로 수림 가족보다 순례 씨와 정서적으로 가깝다. 사실상 수림은 자신의 가족을 경멸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돌려받을 생각 없이 베푸는 순례 씨와 달리 수림의 가족은 각양각색으로 철없고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던 수림의 가족이 금전적으로 곤란해지면서 순례 주택에 입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다소 예측 가능하면서도 통쾌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주된 웃음 포인트는 가족 구성원들의 속물적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수림의 시니컬한 화법이다. 화자는 경제관념이 없고, 상황 파악 못한 채 의존적이고 뻔뻔한 자신의  가족들을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뭐가 부끄러운지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으로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부모라면 더욱.


순례와 수림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도 독특하고 재미있다. 그들은 외할머니와 손녀에 가까운 관계지만 그저 서로를 최측근이라고 일컬으며 가족이자 친구처럼 의지한다. 돌아가신 자신의 외조부를 '순례 씨의 사별한 전 남친'이라고 명명하는 수림은 재치 있는 소녀이다.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책임감과 자립심과 강한 기특한 캐릭터이다.


순례 주택 거주자들과 수림의 친구들, 동네 이웃 사람들에 관한 디테일과 그들 사이의 상황 설정이 또한 흥미롭다. 각각의 캐릭터뚜렷해서 그들을 둘러싼 삶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이대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해도 성공적일 것 같다. 책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감상을 나누며 ‘순례 씨 역할을 어떤 배우가 맡으면 제일 어울릴까’를 고민해보는 것도 거운 부분이었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스스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소설 속 순례의 말. 이것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어른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진정한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는 말도 이 소설에서 밑줄 그은 문장이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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