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교시 연강을 마치고 휴대폰을 보았다. 부재중 전화 1통. 엄마였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그 확실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콜백을 하기 전에 나는 그냥 알았다. 아, 가셨구나. 내 엄마의 엄마가. 내 할머니가 이제 떠나셨나 보다.
전화기 너머 속 엄마의 목소리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한 듯, 지나치게 차분했다.
-응..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 딸, 지금은 네가 와도 당장 할 일이 없으니까 오려거든 나중에 학교 마치고 천천히.
이제 막 자기 엄마의 죽음을 겪은 사람이 자기 딸에게 이렇게 침착하게 말할 수가 있구나. 나도 따라서 차분해졌다.
-응 엄마, 그랬구나.. 괜찮아. 내가 곧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났더니, 머릿속 사고 회로가 정지화면처럼 멈추었다. 할머니가 죽었다. 엄마는 혼자다. 나는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 근데 뭘 해야 하지? 뭐가 제일 먼저지? 누구한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지? 아, 남편.
남편은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순서를 알려줬다.
-학교에 말씀드리고, 몇 시에 나올 수 있는지 알려줄래? 나도 맞춰서 나갈게. 바로 어머님한테 가자.
교감실에 가서 사정을 말했다. -아..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습니다. 어서 가보셔야겠네요. '마음이 아프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 비로소 내 마음의 상태를 인지했다. 나에게 슬픔과 아픔이라는 감정을 제일 먼저 인식시켜준 교감선생님에게 감사했다.
경조사 특별휴가를 상신하려던 차에, 수업시간표를 보았다. 기말고사까지 2주가량 남은 시점. 모든 수업에서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교과서 진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3일간의 공백은 계획에 없던 것이기에 분명 중대한 차질이다. 학생들의 그룹 발표수업이 한창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발표수업으로 진도를 다 나가려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험 직전 마지막 수업까지 빠듯하게 계획을 해놓은 상태였다.
오늘 오후 수업이 5,6,7교시다. 이걸 다 커버하고 퇴근한다면 다음날과 그 이튿날을 빠져도 마음의 부담감이 줄어든다. 고민을 했다. 지금 나갈 것인가, 7교시까지 끝내고 나갈 것인가. 엄마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지금 올 필요 없다.. ' 3분 정도 고민한 후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 나 근데, 7교시까지 다하고 4시 반에 나가얄것 같아. -음.. 그래? (잠시 침묵) 조금 더 생각해 봐. 5분만 더? -이거 아닌 것 같아? -음.. 니 결정이긴 한데, 그래도 좀만 더 생각해봐. 어머님 혼자 계시잖아.. 다시 연락해 줘.
전화를 끊고 나니,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웃는다. 코로나 이전이었으니까 3년 전이었던가. 벚꽃이 만발했던 봄날, 나는 엄마, 할머니, 남편, 그리고 3살 4살이었던 내 두 딸과 함께 경주 보문단지를 걸었었다.
-이쁜 손주랑 손주 사위가 노인네를 꽃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내가 호강하네, 오래 살길 잘했네!
그날의 햇살보다 환하게 웃던 나의 할머니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갑자기 할머니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보고 싶었다. 수업을 제대로 하기 힘들 것 같다. 할머니를 그리고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 마침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고, 노트북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으면서 혼자 숨죽여 울었다.
-꿈에서 말이야, 옛날에 우리 집에서 피우던 연탄불이 매섭게 활활 이야. 그 커다란 불씨가, 갑자기, 한순간에 훅하고 꺼지는 거지. 아이고 불이 갑자기 꺼졌네.. 어쩌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저어 밑바닥에 아주 작은 불씨가 미약하게 살아있더라고. 아침에 일어나서 꿈이 참 이상하게 생생하다..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엄마가 위독하다고. -와, 신기하다 그 꿈. 엄마는 보통 때 꿈꿔도 내용 기억 못 하더니. -응. 그러니까. 근데 그 전화를 받고 순간 나도 모르게 조금 안심했다? -왜 안심이야? -내 자식들에게 아무 일도 없겠구나, 싶었던 거지. 할머니는 어차피 아프셨으니까.. -아..... 그 꿈이 뭔가 불길했구나. -응.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그게 내 엄마였구나. 그 순간에,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자식들에게 나쁜 일이 안 생겨서 다행이다.. 내 엄마는 위독해졌는데.
엄마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시도했다. 겪어보지 않은 일에 진정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자식이 뭐길래, 그런 상황에 안도할 수 있는 것일까. 나였어도 그랬을까..생각하니 갑자기 아찔하다. 내 엄마가 많이 아프면, 그리고 죽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분일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내 다정한 할머니를 더 이상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슬픔이 차고 넘쳤다. 나는 내 몫의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할 만큼 해서 여한이 없다고 했다. 더 아프지 않고 돌아가신 게 잘된 일이라고도 했다. 엄마가 할머니를 어떻게 보살폈는지 옆에서 지켜봐 왔던 나는 엄마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끄덕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