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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23. 2022

상실을 견디는 사람

어른이 된다는 것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을 잘 기억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입관식. 눈물이 차올라서 자꾸 시야가 흐려지는 걸 원치 않아서,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참았다.

할머니는 수의를 입은 채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수의라는 옷은 소매가 지나치게 길어서 나는 할머니 손을 찾으려고 소맷자락 속으로 내 손을 쑥 집어넣어야 했다. 손에도 발에도 뭔가 씌워져 있는 상태라 맨 살을 만질 수는 없었지만, 차가운 온도가 전해져 왔다. 고인의 손을 잡아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차가워서 조금 놀라면서, 나도 모르게 그 서늘한 손을 꼭 잡았다. 내 체온을 할머니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다.

평소처럼 그저 눈을 감은 채 자고 있는 듯한 얼굴. 조금 고단해 보이기도 하고 편안해 보이기도 하는 표정. 웃을 때 더 깊어지는 주름이 없어서, 어쩐지 젊어 보인다. 할머니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일찍이 없었다.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너희들 왔구나!' 하며 평소처럼 다정하게 말할 것만 같은데. 콧구멍과 입은 하얀색의 무언가로 이미 채워져 있었다. 차가운 손과 굳은 어깨를 매만지며 할머니 귀에 대고 말했다.

-할머니, 잘 가. 잘 가요. 가서는 아프지 말고, 재미나게 지내요. 나중에 만나요 우리.

엄마와 삼촌과 외숙모와 사촌오빠들도 작별인사를 했다. 여러 사람의 흐느낌과 훌쩍임이 함께 허공으로 전해졌다. 그다음은 할머니를 관에 넣기 전에 몸을 싸서 묶는 소렴, 대렴이라 불리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두 명의 장례지도사가 죽은 이의 몸을 삼베로 정성스레 묶고 감쌌다. 몇 겹인지 세다가 놓쳤을 만큼 여러 겹으로 반복했다. 그 과정은 마치 백화점에서 아주 귀한 물건을 포장하는 듯 정성스럽고 꼼꼼하며 정교한 손기술을 요하는 전문 작업이었다. 그 일에 필요한 삼베의 양이 어마어마했고, 매번 가위로 삼베 자락의 끝을 세등분 하여 특이한 매듭으로 마무리했다. 그 분들의 동작과 행위는 예를 갖춘 동시에 어떤 비장함과 절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세게 묶는 것 같아서 할머니가 많이 갑갑할까 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삼베가 한겹 한겹 쌓이면서 뭔가 중요한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쁘게 싸져서 관 속에 들어간 나의 할머니는 이제 갑갑함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차원의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이제 할머니를 잘 배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전에 읽은 소설에서 <순례주택>에서 '어른은 스스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라고 했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어른이 된다는 건 상실을 견디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나 어른이 되는 중이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커다란 견뎌냄이 필요한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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