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놀랄 만큼 그대로였다. 십수 년 전, 내가 매일 이 열차에 편도 40분 가량 머물며집과 대학을 오가던 그 시절로 순간 이동한 듯했다.
열차의 적당한 소음과 진동 속에서, 스르르 졸려서 나도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흠칫 놀랐다. 이 익숙한 기시감이라니. 몸이 기억하는 건가. 대학시절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앉은 채 꼬박꼬박 잠이 들곤 했었다. 졸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서 오전 수업에 지각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던 그 시절. 내 이십 대의 한복판이었다.
마침 내 맞은편에는 이십대로 추정되는 여학생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에게서 숨길 수 없는 화사한 청춘의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온다. 음, 나도 저렇게 영 young 했었지.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일상을 살았던가. 그 시절의 일부를 보냈던 장소에 앉아있자니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학교 수업 끝나고 남자 친구와 만나서 뭘 먹을지, 주말에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 무엇을 입을지를 고민했다.과외 아르바이트가 연속으로 있던 날은 너무 고단해서 그만두고 싶었고,시험기간이면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목표로 했던 토플 성적이 안 나와서 좌절했고,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연락을 안 하고 시큰둥하게 대했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대학원 때는잘 안 써지는 논문을 붙잡고 괴로워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가 그립다. 대학원 세미나 수업이 끝나고, 학교 앞 라이브 재즈 클럽에 앉아서 혼자서 몇시간이고 음악을 듣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던 그밤이 사무치게 그립다. 과에서 단체 엠티를 가서 밤새도록 게임하며 과음하고,다음날 숙취로 괴로워하던 그때를 추억한다.
2022년 8월. 이번 달에는 미취학 자녀 돌봄을 사유로 하루 연가를 써야 한다. 매일 출근하는 일은 힘들지만, 종일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것보다 월등히 힘든 일이므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연가 상신 전, 구두 결재를 받으러 교장실에 갔다. 교장 선생님은 나의 사정을 듣고 공감해주셨다.
“아이 키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죠. 힘들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일 좋을 때더라고요.”
주위의 육아 선배나 인생 선배, 어른들로부터 숱하게 들어온 이 말이 오늘따라 다르게 들렸다. 요즘 내 일상은 한없이 버거운데. 자유는 점차 축소되고, 의무는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삶의 무게에 자주 숨이 막히는데. 훗날의 나는 지금 이 시점을 그리워하게 될까. 시간이란 무릇, 힘든 기억은 흐릿하게 만들고 좋은 기억은 한층 미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모든 과거는 추억의 대상이 되는가.
일상을 잘 관찰하면 좋은 일들과 감사한 일들이 가득하다. 타고난 우울의 기질도 섬세한 감성의 촉매가 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육아라는 일은 고된 노동이지만, 그 세계에는 달콤한 찰나들이 가득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분명 지금을 그리워할 것임을 안다.
학기 초에 나는 우리 반 교실에 급훈을 걸었다.
‘다시없을 지금, 여기. 다시없을 내가 있다.’
매일 보며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걸었는데.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고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는 그 흔한 말을, 그것이 잘사는 일임을, 나는 또 잊은 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