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괴로운가’에 관한 사회문화적 고찰
왜 유독 여성의 질환을 설명할 때는 남성의 질환을 설명할 때보다 생물학적 원인을 더 들먹이는가? 여성이 남성과 다른 것은 생식기뿐만이 아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가난하고, 더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다. 출산 및 독박 육아를 수행하며 사회와 고립되고, 직장으로 다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을 남성보다 훨씬 심하게 받는다. 성폭력 및 가정폭력의 위험에 상시 노출된다. 특정한 역사와 문화, 사회 안에서 여성이 처한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여성호르몬에서만 원인을 찾는다면 결코 여성 우울증, 나아가 여성 환자가 많은 질환들을 제대로 탐구해 갈 수 없을 것이다.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 갇혀 폭력을 계속 당하다 보면, 피해자는 상황을 바꾸거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대신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쪽을 택하게 된다. 내가 이 상황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거나, 이것은 꽤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거나, 피해자인 나보다 가해자를 옹호하며 불쌍히 여기기도 한다. 오랫동안 고통에 전 사람이 새로운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낯선 행복보다는 익숙한 고통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재해석할 자원은 물론,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가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관계가 절실하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 속 노동자이기 때문에 겪는 고단함에서도 비롯된다. 이들에게는 아플 시간도 없다. 학창 시절부터 끊임없이 스펙을 쌓아야 하고, 간신히 들어간 회사 내에서도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경신을 요구받는다. 이제는 '능력뿐 아니라 '몸'도 경신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잘 해내면서 주식 투자와 부동산 공부도 해야 하며, 매일 헬스클럽에서 바벨을 들고 닭가슴살을 먹어야 한다. 이 얼마나 피로한 삶인가. 성장 중심 사회에서 정해진 루트를 따르지 않는 사람, 망설이는 사람, 아파서 속도가 더딘 사람은 곧잘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 해내지 못하는 것인데, 이 상태를 병리적으로 본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에게 우울증 약이나 ADHD 약 대신, 이들을 해변으로 보낸 후 트로피컬 칵테일 한 잔을 쥐여주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번아웃 증후군, 공황장애, 우울증, ADHD…. 사람들이 병명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라도 지금의 고단함을 인정받고 쉬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책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2021, 창비)의 제목처럼 모두가 바쁘고 힘들지만 과중한 업무와 자기 관리를 해내는 상황에서, 이를 버거워하는 나는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나의 고통은 제대로 생활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이때 그나마 속 시원히 나의 고통을 인정해 주고 '잠시 멈춤'을 허용하는 것은 진단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