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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Sep 18. 2022

<작별인사>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은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일상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미래사회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철이'라는 남자 청소년이 과거를 회상하는 플롯으로 전개된다. 철이는 평양에 위치한 휴먼매터스 라는 연구소 캠퍼스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평온하고 안락한 날들을 살고 있었다. 철학을 뜻하는 이름처럼 철이는 아버지로부터 철학적인 홈스쿨링을 받아왔다. 문학작품을 읽고, 다양한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한자의 의미 같은 것들을 배웠다. 그는 주기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곧잘 들여다보는 성찰적인 자아의 소유자이다. 평화롭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낯선이 들에 의해 낯선 곳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 조우한 철이는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초반부를 읽으면서 흔한 SF소설과 영화에서 이미 구현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된 주인공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떤 고민을 하게 될지 충분히 예상이 되기도 했다. 고도의 학습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우위를 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는 블레이드 러너적인 전개인 건가 싶어서 실망하려던 찰나, 저자의 메시지는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김영하 작가님인데, 이렇게 단순 할리가 없지..!)


이 책을 읽는 이틀 동안, 다른 일을 하느라 잠시 책을 접어두어야 했던 순간내 마음은 줄곧 이야기 속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것도 하나의 화두이다.) 인물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토론이었다. 그들의 말은 내 안의 어떤 것을 복합적으로 건드렸다. 나는 뭔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는 불현듯 맨 앞장이 생각나서 황급히 다시 첫 장을 펼쳤다.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연결되었고, 나로 하여금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최근에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세계관도 확장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은 '자문自問하게 만드는 책'인데,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몹시 훌륭한 텍스트이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사고로 신체를 잃은 휴머노이드는 의식을 복원하고 새로운 몸을 제공함으로써 재생시킬 수 있다. 그 과정을 두고 선이와 달마라는 두 인물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가 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달마와 선이의 대화 부분을 윤리학자 데이비드 베너타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책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달마는 재활성화를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개별적인 의식을 하나의 절대적인 의식으로 통합하여 다툼도 전쟁도 갈등도 없는 세계를 창조할 것을 추구한다. 영화 <루시>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되었던, 인공지능이 의식으로서 존재하는 차원의 이야기인 듯했다. 하지만 선이의 입장은 다르다. 사람이든 기계든 의식을 가진 존재는 그 우연성이 너무나도 귀하기에 마땅히 살아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우주정신'은 우리가 이 세상에 왔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존재한다라고 믿는다. 선이라는 인물은 상당히 인간적이면서 이상적인 캐릭터이다. 영적인 수행자 혹은 따뜻하고 수용적인 선구자적 이미지로서, 내가 평소에 추구해 왔던 관점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달마의 염세적인 관점이 더 와닿았다.


"저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하늘의 새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테니까요."

"살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지 않아요?"
나는 달마에게 물었다.

"태어났다면 느낄 기쁨을 태어나지 않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게 참으로 손해일까요? 손해라 느낄 존재가 아예 없는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너무 억울하겠죠. 감옥에서는 간수와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끔찍한 것들을 먹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립니다. 그러다 몇십 년 후 재심이 열려 그가 무죄였음이 밝혀지고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크지만 기쁨도 있다. 그러니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때때로 아이와 함께하는 사랑스러운 순간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럴 땐 '아이 낳길 참 잘했다' 혹은 '오, 얘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아이를 이미 낳았기에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낳지 않았더라면 느끼지도 못했을 기쁨인데,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그 기쁨을 못 느꼈으니 손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아이를 키우는 일 다층적인 고통 수반한다.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아서 육아를 둘러싼 일말의 고통  않았다면, 그건 이득인 상황일까.


주체를 바꾸어서 말해보자. (주로 어른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도 꼭 자녀를 꼭 낳아서 그 기쁨을 누려보길 바란다. 그건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큰 기쁨이거든.'라는 식으로 말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그 말은 마치 '자식을 낳아서 느낄 기쁨을 너는 못 느끼다니, 그것 참 안타깝구나'라는 식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걸까. 


결국 기쁨이나 고통의 근원인 존재 자체가 없는데 그것이 반갑거나 아쉬울 일일지에 대한 상념이다. 태어날 자유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과연 태어나는 쪽을 선택했을까.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를 고소한 사례가 있다. 같은 이유로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고소한 영화 <가버나움>의 어린 소년,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떠올랐다. '태어나는 건 축복'이라는 말은 때로 가혹하다.




꽤 오래전부터 혼자 품어오던 막연한 의문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먹고사니즘의 무게를 떠받치느라 좀처럼 수면 위로 나오지 못한다. 이 소설을 매개로 하여 그런 종류의 잡념을 사유로서, 활자로서 구체화해본다. 이 짧고 유한한 삶의 한복판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생의 수많은 갈래 길에서 자주 방황하는 나에게 이런 책이야말로 축복이다.


2년 전 이 소설이 짧은 버전으로 공개되었을 때 원제가 <기계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기계의 시간이 작별인사가 되는 과정에는 깊고 거대한 정서가 관여했을 것 같다. 인간의 의미, 삶의 이유, 인간답게 산다는 것, 생의 유한함... 우리가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며 날이 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주제들이 바로 이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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