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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Sep 05. 2022

수학여행 설렘주의보

내가 가본 제주한여름 한겨울, 둘 중 하나였다. 직업적 특성상 학기 중에 연가를 쓰기가 상당히 어, 방학 기간에만 제주를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열하는 햇볕에 피부가 다 타는 줄도 모르고 물놀이했던 중문 해수욕장에서의 여름, 패딩코트를 꽁꽁 여미고 걸었던  쌓인 사려니 숲 의 제주였다.


그런 나에게 올해는 몹시 특별하다. 바로 다음 달 시월, 가을의 한복판! 제도로 수학여행을 간다. 수학여행 인솔이 처음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제주행은 처음이다. 팬데믹으로 지난 3년간 수학여행이 무산됐던 요즘. 코로나 재유행으로 올해도 단체여행의 실현은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일단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 중이다. 수학여행 동의서를 받고, 참가인원을 확정했고, 숙소, 항공권, 버스까지 모두 단체 예약 완료되었다.

 

여행 일정 중 가장 기대되는 건 바로바로 한라산 등반이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한라산에 오를 기회가 없었던 내게 이번 여행은 일생의 이벤트이다. 높고 푸르고 선선한 가을날 한라산 등반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나고 들뜬다. 업무에 지치다가도 한라산 생각만 하면 갑자기 매사에 의욕적인 사람이 된다.


한라산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으로 미리 입장 예약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매월 1일, 공식 예약 사이트에서 다음 달 산행 예약이 오픈되는데, 1명이 본인 포함 최대 4인까지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학생들은 4인 1조로 조를 짜서 예약을 시도했다. 대망의 9월 1일 오전 9시. 1교시 수업진행 중인 시간이었지만, 교과 선생님들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은 일제히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하지만 이 선착순 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10월 한라산 입 희망들이 동시에 접속했는지, 서버가 마비된 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함께 예약을 시도했는데, 일단 한번 페이지가 열려서 정보 입력을 하고도 대기시간이 4분, 5분... 길어지더니 다시 초기화되는 것이었다. 이건 3년 전 내가 BTS 콘서트 예약을 할 때 겪었던 현상이었다. 와, 한라산이 이 정도 레벨의 핫플레이스였구나.. 를 깨닫는 와중에, 몇몇 조장 아이들이 성공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폰 유저의 실패율이 더 높았고, 조장이 계속 실패하자 조원들이 다른 핸드폰 가지고 하나 된 마음으로 시도했다. 우리는 예약 사이트를 2교시까지 켜 둔 채 계속 기다려야 했다. 대기하는 와중에, 해당 일 정 마감되어 혹여 나와 우리 아이들이 한라산을 못 오를까 봐, 극도로 초조해졌다.

 

교무실에 앉아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데, 우리 반 단톡방에 아이들의 ‘성공했습니다!’ ‘예약 완료!’가 하나씩 떴다. 믿음직한 우리 반 반장이 나를 포함해서 예약 완료해주었고, 100명 넘는 우리 2학년 모든 인원이 성판악 코스 예약에 성공했다. 나는 이미 제주행 비행기를 탄 듯 기쁘고 설렜다. 너무 들떠서 단톡방에 ‘다들 수고했어, 수학여행 신나게 가자♡’라고 남겼다. 시나 한결같이 무뚝뚝한 우리 반 아이들. ‘나만 설레니?’라는 내 말에 진취적 학구파인 모군이 답했다.

‘시험 끝나기 전까지는 설레는 걸 참아아죠..ㅋ’


휴..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구나..어찌 됐든 아이들도 사실은 많이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올해 2학년, 특히 우리 반의 구성원 각자의 이유로 너무 다.  아이들은 감정표현에 다소 서툴지만, 지도하면서 한 번도 화가 난 적이 없다. 얘들이랑 같이 한라산오를 생각에 너무 설렌다. 선배교사들은 수학여행 업무의 연속이라 힘들거라, 이런 나를 순수하다 놀리지만, 나는 진지하게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수학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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