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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Oct 29. 2022

네가 없었으면 난 여기까지 못 왔어.

2022 수학여행

...... 진달래 대피소에서 같이 컵밥을 먹던 친구가 "네가 없었으면 난 여기까지 못 왔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우리 반 아이가 제출한 수학여행 소감문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멈칫했다. 이 말을 들은 그 아이가 지었을 표정이 그려져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산을 오르던 중, 준비해 간 물이 넉넉지 않았는데 (잠깐의 내적 고민후) 목말라하는 친구에게 그 물을 건네었다는 이야기가 그 앞의 내용이었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한라산 백록담까지 왕복 약 20km를 함께 걸었다.




월~목 4일간의 수학여행이 끝나고 금요일은 개교기념일로 쉬었다. 주말이 지나고 학교에 온 아이들이 제일 처음 해야 하는 일은 역시나, 소감문 및 보고서 작성이다. 학교에서는 뭔가 하고 나면 늘 활동 소감문이나 체험보고서 같은 것을 쓴다. 그것을 바탕으로 교사가 생활기록부의 자율활동, 진로활동,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교내 행사가 잦아서, 학생들이 써내야 할 것들이 늘 산재해 있다. 감상문 양식을 받아 든 아이들은 일제히 한숨을 쉰다.


"선생님, 벌써 기억이 잘 안 나요.."

"어떤 식으로 써야 돼요?"

"이거 꽉 채워야 돼요?"


몇몇이 괜히 나에게 투정 부려본다. 하긴, 뭐든 누가 하라고 시키면 더 하기 싫어지는 법이니. 내가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안 했을 것 같긴 하다.


"뭐했는지 잘 생각이 안 나면, 일정표를 보면서 기억을 차근차근 소환해 봐. 그리고 거기에 살을 붙이는 거지. 자, 첫날에 우리 새벽 5시까지 학교에 모여서 공항 갔지? 그날 집에서 나올 때, 공기가 어땠어? 해도 안 떠서 어두웠잖아. 캐리어 끌고 나오면서 마음은 어땠어? 학교에 모였을 때, 버스 타고 공항 갈 때, 친구들이랑 어떤 얘기 나눴어? 그때 기분은? 비행기 타고 이륙할 때, 우리 다들 설렜잖아.

제주 도착했을 때 날씨 기억나? 그리고 우리 첫 일정이었던 4.3 평화기념관. 바람 진짜 많이 불고 추웠다 그치? 배고프고 춥고 졸리고.. 다들 어서 점심 먹으러 가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 와중에 위령패에 붙어있던 수많은 사람들 이름을 보고 잠시 또 숙연해졌지. 그러고 나서 점심 먹었고.. 뭐 먹었더라..? 불고기 전골! 그 장소랑 테이블에 차려져 있던 음식들, 반찬들, 맛 기억나? 그러고 나서 애월 카페거리 가서 유명하다는 그 도넛도 먹고..."


이제 아이들이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도 써본다. 기록해 놓지 않으면 곧 기억이 흐릿해질 것이므로. 그리고 운 좋게 잘 써지면 아이들에게 샘플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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