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Jan 10. 2022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책 리뷰

  우연한 기회에 김보통 작가의 <살아, 눈부시게>라는 책을 읽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헉, 하고 탄식하거나, 찌릿한 전율을 느끼며 감탄했다. ‘이 사람 대체 뭐지..’ 하는 경외에 가까운 의문이 생겼다. 그 이후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디저트>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이거 보통이 아니네>를 연속으로 읽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학창 시절 공부는 잘 안 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재능을 살릴 기회가 없었다. 재수해서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를 갔고(그 유명한 D.P는 본인의 경험담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4년 후에 퇴사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그가 퇴사 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간간이 회사 다니던 시절 에피소드가 나오고, 그것들이 그의  퇴사 결정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도 쓰여있다.
 
  회사생활은 한마디로 그에게 야만적이었고, 인간 존엄에 관한 의문을 들게 했으며, 매일 불행하다고 느끼게 했고, 자주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정말로 아무 계획 없이, 미련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남은 휴가를 이용해 오키나와에 가서는 걷고 또 걷고,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와서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불안해하며 매일 시달렸다. 단순하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불행해지지만 말자’라고 다짐한다.
 

돌아보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은 참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내 모든 불행의 원천이었다. 미래에 진짜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뜬구름 같은 행복을 위해 나는 분명히 실재하는 오늘의 고통과 슬픔을 무수히 감내해야만 했다.
좋은 대학에만 가면, 좋은 회사에만 가면 행복해질 거라는 사탕발림에 놀아나 수많은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했던 지난날들.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다.
......
연이은 경쟁 속에서 누적된 피로 위에 다시 피로를 쌌는 나날을 보낸 끝에 드디어 좋은 회사에 들어갔음에도 어째서 삶의 질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열악해져만 간 것일까. 바로 그 '미래의 행복' 때문이다. 고작 그것 때문에 나는 지난 수십 년을 불행하게 지내야만 했다.
그러므로 '불행해지지만 말자'는 현재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불행해지지 말자'인 셈이다.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너무 먼 얘기이기 때문이다.
......
바닥에 드러누운 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불행한가?’
다행히 아니었다.
아직은.

P.109-110

  그는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뜬금없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그만둔다. 어느 날은 집에서 브라우니를 굽다가 문득 연필을 잡고 그 브라우니를 그려본다. 다시 그림을 그린 건 17년 만이었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본 사람들의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올리자,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림 요청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걸 계기로 만화 작업을 의뢰받게 되고, <아만자>를 그려서 세상에 알려졌다.
 
  돌고 돌아서 결국, 자신이 재능 있었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문장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고 느꼈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누구보다 잘 들여다 보고 그걸 존중해주었다는 점에서였다.
 
  ‘회사생활 원래 힘든 거야,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너만 그렇게 힘든 게 아니야, 나가보면 회사가 든든하고 안전한 울타리였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라는 사람들의 말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는 건, 타인보다 자신을 더 믿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행복의 지도>를 쓴 에릭 와이너는 '우리는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라고 했다. 이 복잡하고 유혹적인 세상에서 이런 것들을 잘 구별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내 기분이 어떤가, 나는 괜찮은가, 혹시 나는 지금 불행하지 않은가?’ 이 질문을 매일 던져보고 꽤 진지하게 생각해 본 뒤 꼭 대답하고 싶다. 나에게. 내가 받는 느낌내가 내는 목소리를  민해게 수신해서 더 생하게 반응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