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아주 오래전, 물자를 절약하자는 차원에서 일명 ‘아나바다’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라는 문장의 줄임말로, 환경을 생각하자는 운동이었어요. 줄임말의 어감도 재미있고, 그 당시 어린이였던 제게도 기억에 남아있을 만큼 꽤나 유명했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에 참여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도 충분히 필요한 활동이 아닌가 싶네요.
Ⅱ. 오랜 연애가, 서로의 사이에 생긴 틈을 이기지 못하고 갈 길을 잃은 상황을 마주한 지 1년째. 그래서일까요, 사랑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끝도 없고 정답도 없는 물음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상. 마음을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얼마나 쉬운 일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도 그 가볍고 하찮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넌더리가 나는 중입니다.
Ⅲ. 사랑에도, 아나바다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쓸데없고 이상한 의문이 문득 들었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이토록 다른 이야기를 그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모두에게 같은 결론이 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제가 찾은 결론은 그러나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사랑은, ‘아나바다’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Ⅳ. 사랑은, ‘아’껴서 표현하기엔 이미 마음속에 가득 차 드러내지 않을 수 없으며, 그가 너무 소중해 아껴두기만 할 때 오히려 서로의 간극을 넓혀나가는 것. 사랑을 ‘나’눠 여러 일에 마음을 두고자 할 때 반드시 한 번쯤은, 그 사랑을 나눠 받는 이가 아쉬움을 토로하게 되는 것. 사람은 바꿔 쓰는 게 아니라 하듯,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를 다른 존재로 ‘바’꿔 잘 맞춰가겠다는 다짐을 부질없게 만드는 것.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마음을 알면서도 ‘다’시 쓰려고 할 때, 오히려 마지막 남은 마음마저 조금씩 식게 만드는 것.
Ⅴ. 그래서 저는, ‘아나바다’ 하지 않는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아깝고 소중한 만큼, 더 많이 표현하고 사랑하는 것. 한정적인 사람의 마음을 나누어 여러 가지 일에 마음을 쏟고자 할 땐, 그 마음을 받는 이의 심정 또한 충분히 고려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바꿔가면서까지 서로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다시 쓰는 사랑은, 서로가 겪어온 지난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을 때가 아니면, 하지 않는 것까지.
어쩌면 이 이야기의 끝은 그래서 슬픈 결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서로를 위해 그게 필요한 일이라면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지금껏 그래 오지 못해 이미 서로가, 각자의 별에 서 있는 것 같은 지금에서야 그렇게 다짐해봅니다. 지나온 계절, 서로에게 구원이었던 그날들을 마음 한편에 곱게 말려 잘 간직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