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틀리지 않았다.
직업, 쉽지 않은 선택의 길 위에서.
글을 쓰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직업군을 찾아보고 준비를 하게 된 것은, 온전히 꿈을 좇을 용기는 없으나 현실에 순응해 사는 것도 마뜩지 않아서 둘 다 충족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그리고 정해진) 여유시간이 있으면서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 그게 내가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이유였다.
사실 쉽지 않으리란 생각을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딴짓’을 한다는 것도, 무엇보다 그런 ‘딴짓’ 할 시간을 허락해줄 만큼 업무시간이 짧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취업 준비를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맨손으로 부딪혀 볼 수 있는 직장 중에 가장 안정적이고, 괜찮아 보이는 곳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대로 나는, 생각보다 순탄히 내가 잡았던 기한 안에 원하던 직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게 다 잘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짧은 기쁨의 순간이 지나가고, 막상 부서 배치가 시작되면서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듣던 얘기와 달리 나는 일찍 마칠 수 없는 곳에 배치되었고, 심지어 그곳은 주말도 돌아가면서 근무를 해야 하는 특수한 근무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해진 짧은 근무시간과 주말을 쉴 수 있는 곳. 내가 원했던 딱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맞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령받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부서 이동까지 하게 되었을 때, 신입사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조직을 보면서,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말도 안 되는 업무들을 인수인계받으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퇴사가 아니라 자살을 생각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누군가는 온전히 그 직장에 들어갈 수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고 바라는 곳을, 글을 쓰는 내 불안정한 생활을 지탱해 줄 돈벌이 수단 정도로 본 나의 불순한 의도가 문제였던 걸까. 한참을 그렇게 괴로워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고, 그보다는 고갈되는 체력으로 하루하루 업무시간을 버티기도 바쁜 나만이 남아 글은커녕 방전된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조차도 버거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다음 자리를 원하는 곳으로 배치받으면 된다는 희망 하나로 겨우 2년을 다 채웠을 때쯤, 일이 잘못되어 기존보다 더 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나는, 마침내 마지막 남은 희망이 ‘뚝-’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선택했던 길이, 어째서 자꾸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가는 걸까. 내가 너무 순진했나? 어리석었나? 그도 아니라면, 정말 더럽게 재수가 없는 타입인가...?
사실은 모든 게 다 정답 같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 내 머리를 쿵하고 때리는 것만 같았다. 나의 선택이 늘 옳을 수도, 내게 잘 맞을 수도 없으며,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해서 그 길 위에서 만날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모두 다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 선택이 나의 몫이듯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일 책임 또한 나의 몫이라는 것.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나는, 선택만 했을 뿐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런 뒤에는 끝 모를 나의 억울함의 이유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지금의 길 위에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좌절 중이지만, 또한 책임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삶의 수많은 선택들 중 손에 꼽을 만큼 어려운 ‘직업’을 선택하면서 한두 해만에, 한두 번만에 네 선택이 틀렸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장에 나의 꿈과 닮은 일상을 내게 가져오지 못한다 해서 그 일이 가치 없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님을 아니까. 그리고 이 모든 발걸음이 결국, 나의 삶 전체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을 믿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감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삶의 갈림길마다 그대가 해온 선택들이 늘 옳거나 스스로에게 좋은 방향은 아니었더라도, 그에 따른 결과들을 책임졌기에 지금의 그대가 있음을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는 말. 그런 긍정 뒤에는 반드시, 그대의 선택이 만들어낸 알 수 없는 결과까지도 또다시 인생의 발판으로 삼게 해 줄 힘이 생겨난다는 말.
그래서 그대의 선택은, 그 결과는 늘 그대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는 믿음과 축복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