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가 익숙한 나라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나이와 직급, 성적을 서열화하고 그 서열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 늘 비교의 틀 안에서 살아온 저는, 비교하지 않는 삶이 어쩌면 더 불안하고 익숙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못 하는 편은 아니었기에(죄송합니다.), 그 비교가 합리적이고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만 근래에 와서는 결국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우리의 악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네요.
그러나 재미있게도, 그 악습을 부정하는 생각이 움튼 것은 뿌리 깊은 입시제도 등과 관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 수준은 이미, 너무 깊이 몸에 박혀서
부정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제가, 비교의 틀을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만나는 SNS와 같은 신문물(웃음)에서였습니다.
SNS가 생겨난 뒤로 각자의 일상을 멀리 있는 누구와도 손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유가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
너무나도 자주 들어봤지만, 그마저도 익숙해져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그 이야기 말입니다.
일상의 공유가 때때로(아니 자주) 좌절이 되어 돌아오는 이상한 공간. 누군가의 반짝임과 아름다움을 보면서
별 거 없는 나의 하루가 초라하게 잠이 드는 그곳.
아무도 우리를 소외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소외시키게 되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또다시 비교의 틀을 마주하고
서열화를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더 멋진 곳을 가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많은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를 보면서, 그의 하루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어 좋은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따금, 아니 어쩌면 자주
씁쓸함이 올라오는 것은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인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의 일상에 순수하게 공감하는 것을 방해하는 걸까,
그들이 예쁜 옷을 입고, 경치가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인 것은 내게도 참 기쁜 일인데,
그게 왜 종종 나에게 상처가 되는 걸까.
바보 같은 질문이라 생각하면서도 저는
한참을 헤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바로 위 문단 가장 첫 번째 구절이 무엇인지 눈치채셨나요? ‘나보다 더’라는 그 말을...? 아무도 그렇게 읽어주지 않았지만,
우리가(아니요, 어쩌면 그냥 제가)
그런 문맥들을 읽어나갈 때마다 으레 자신도 모르게 붙이는 저 ‘비교급’이, 지인의 멋진 SNS 사진 앞에서 우리를(저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누구보다 비교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삶은 이렇게 누군가의(혹은 나의) 일상을 공유하는 순간마저
‘더 나음’과 ‘덜 좋음’이란 틀로
서열을 매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힘들고 고된 하루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아 행복해지고 싶었던 각자의 자기 위안이,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빛을 잃어버리는
이 안타까운 상황들이 생긴 이유, 말이죠.
그렇게 보니 저는, 어쩌면 제 일상을 위해
누군가의 일상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되었습니다.
나의 삶에 타인을 들러리로 세우려다,
주인공보다 더 멋진 삶을 사는 들러리로 인해
상처 받았던 건 아닐까 하는 좀 서글픈 생각들을요.
누군가보다 나은 경험도, 혼자인 시간과
사람들과 함께인 시간 사이의 우열도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데,
그저 순서를 매기는 데 익숙한 나의 마음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삶이란 건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일련의 흐름이니,
그 안에서 각자에게 중요한 순간과 장소, 사건들은
모두 다 다를 겁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당연한 얘기이겠지만요.
그렇게 오늘 내가 안락한 집에서 피했던 그 비를,
누군가는 우산 하나 없이 온몸으로 맞아 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내 하루가 지난했던 만큼 그대의 하루도
쉽지 않았을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해보려 합니다. 때 묻고 찌든 나의 일상에도
햇빛 찬란한 시간들이 있어 살아갈 만하듯,
그대가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그 햇살도 어쩌면,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 그대에게 내려진 축복이겠구나, 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요.
그 마음이 결국은, 비교를 벗어나 내 일상을 온전히 바라볼 힘이 되어줄 것을 알기에 이는 또한 제 자신에 대한 역지사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다른 두 작품을 비교하며 평가하는 과오를 내려놓고, 각각의 작품 안에서 문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역지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