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작년 어느 날이었다. 몸이 너무 힘든데 그 와중에 버스가 조금 전에 지나가 버린 것을 보고 나는 한참 고민 끝에 다시 사무실 쪽으로 돌아와 택시를 불렀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오늘 같은 날 택시 타려고 돈 버는 거지.” 하는 전화 너머 언니의 위로에 홀랑 넘어갔던 것이다. 함정은 그런 ‘오늘 같은 날’이 종종 있으며 출근길에 택시를 애용하는 직장인이라는 거였지만. 어찌 되었든 (내 기준) 가장 유명하고 자주 이용하는 카*오 택시를 부르고 기다렸는데, 기사님은 내가 가려는 방향과 반대쪽 위치에서 오시는 걸로 어플에 떠 있었다.
한번씩 부모님이 퇴근길에 태우러 와주셔서 가장 짧고 빠른 길을 알고 있는 터였고, 그 길로 가려면 택시를 돌려야 했기에 기사님이 근처에 오시면 얘기를 드리려던 상황이었다. 아파트 골목 사이 왕복 1차선 도로. 길 바로 건너편에 오신 택시 기사님이 창문을 내리셨기에 “이쪽으로 차 좀 돌려주세요, 기사님.” 하고 말씀드리는데 “그쪽으로 가는 거보다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더 빨라요, 아가씨. 그냥 건너오세요.” 하는 식으로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평소 같으면 “그래도 차 좀 돌려주세요~.” 하고 얘기드렸을 텐데 그날은 그런 말 하고 있을 기운도 없어서 그냥 건너 가 택시에 탔다. 기사님은 내게 ‘아가씨가 가려고 했던 방향은 퇴근길에 많이 막혀서 이쪽으로 가는 게 낫다’며, 본인이 더 빠른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출발한 기사님’s pick 퇴근길. 예상대로 길은 매우 심각하게 막혔고, 기사님은 당황하셨는지 괜히 앞 차 욕을 하시면서 조금은 거칠게 운전을 하셨다.
그러다 항상 정체되는 긴 구간을 지나 집에 다 와 갈 때쯤 길이 조금 덜 막히자 “이거 봐요 아가씨, 내 말이 맞죠?” 하고 얘기하시는 기사님께 나는 그냥 “네, 그러네요.”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후회했다. 아무리 기운이 없어도 처음부터 원래 가려던 방향대로 가 달라 말씀 드릴 걸 싶었기 때문에. 최소한 그 길로 오면서도 막혔다면 그건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였고, 또한 내 선택에 의한 결과였기에 이렇게까지 답답하거나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을 텐데 싶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왜인지 모르게 인생도 이렇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어쩌면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 그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목적지까지 이끌어 준, 경력 많은 기사님이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 하신다 해도, 그건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얘기라는 걸. 마치 워라밸이 중요해서 이 직업을 선택한 나에게, 내가 발령받고자 하는 근무지는 사람이 나태해지기 쉽다며 더 조직이 크고 일도 많은 근무지로 내신을 쓰라던 내 상사님의 충고이자 강요처럼 말이다.
때론 정말 사람 좋고 내가 모르는 길을 알려주시는 기사님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 손에 꼽을 만큼의 확률인 것 같고(‘프로 출근길 택시러(?)’로서 그런 기사님을 딱 한 번 만나봤다.), 내가 빠른 길을 알려줄 테니 그 방향으로 가자는 기사님의 말씀에 “네”하고 대답한 책임은 온전히 내가 져야 하는 몫이니(예를 들어 택시비라든가, 내 월급의 일부라든가...), 앞으로는 정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때에만 “예” 해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렇게 글 쓸 시간을 허락해 준 휴직 또한 그렇게 “예” 하지 않은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인생 선배들에 의해 습관처럼 해왔던 내 인생의 “예”를 더는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아니오.’ 한 결과. 그래서인지 조금은 후련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그분들의 말씀처럼 오래 에둘러 가는 힘든 길인지, 내게 꼭 맞는 길인지 이제는 정말로 나의 몫이자 책임이 되었으니까. 나는 이제야, 내 힘으로 목적지까지 나설 기회를 얻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더는 “예”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