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의 그를 사랑하는 일
몇 해 전 본 뮤지컬 <캣츠>를 떠올리며
몇 해 전 겨울이었다. ‘캣츠’ 오리지널 공연팀이 내한한다는 소리를 뒤늦게 듣고 좌석을 예매하려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재빠른지 역시 대다수 좌석이 다 매진되고 그나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는 3층 왼쪽 가장자리 맨 앞줄 정도였다. 어차피 돈도 많이 없었던 시기였고,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2층에서 공연을 본 적도 있어서 그 정도면 공연을 관람하기에 충분할 거라 생각해 예매를 진행했다.
그리고 당일이 되어 기쁘게 공연을 보러 갔으나, 좌석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무대와의 거리가 멀었다. 전지적 관객 시점에서 무대와 1, 2층 관객들을 구경하게 되는, 필요 이상으로 거리감이 심하게 생기는 그 자리는 내가 공연에 전혀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들었을뿐더러, 아직도 기억나는 옆자리 관객의 비매너 행동까지 더해져 나의 첫 ‘캣츠’ 관람은 너무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든 상황이 너무나 억울(?)했던 나는, 그 날 공연 인터미션 시간에 다른 날짜의 공연을 다시 예매했다. 그것도 오케스트라석을 제외하고는 맨 앞줄 좌석으로. 그리고 대망의 재관람 날, 눈이 올 것 같던 흐린 날씨와 조금은 매섭던 겨울바람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럼에도 무언가 마음이 이상하게 설렜던 그날.
3층에서는 콩알만 하게 보이던 배우들의 얼굴 표정이, 그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건 새삼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이 무대에 임하고 있는지, 짙은 고양이 화장 속에서도 그 감정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우 중 한 명이 내 좌석 근처에 내려와서 속삭이듯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배우 여러 명이 무대 근처 관객석에 내려와서 노래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을 만큼 그 날 가까이에서 본 공연의 몰입감은 최고였다. 이런 이유들만으로도 같은 공연에 돈을 두 번 지불한 값이 충분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러나 만족감을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뮤지컬에 나오는 O.S.T들이 하나같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같이 ‘캣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Memory’라는 노래였으므로, 공연을 보러 가기 전까지는 그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실제 공연을 보면서는 ‘Memory’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곡들이 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곡마다 그 노래의 주인공 고양이가 가진 특징이 잘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연 시간이 짧지 않은 작품이었으나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이렇듯 매력적인 노래들의 공이 컸다고 생각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지만, 직접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어쩌다 봤던 영상 속 '캣츠'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람이 고양이 분장에 꼬리까지 붙이고 움직이는 게 영상으로만 봤을 때는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본 그들은 정말 그냥 고양이처럼 보였다. 아니, 그냥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신기한지,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도 환상 속에서 꿈을 꾸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걸.
‘Jellicle cats come out tonight.’하고 시작하는 대표곡은 전주만으로도 고양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나타내기에 충분했으며, 각각의 고양이들이 지닌 자신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반짝거리고 아름다웠다. 같은 집에 사는 쥐들을 훈련시켰다는 고양이, 마치 기차역의 역장이라도 되는 듯 마스코트가 되어 기차를 타고 다니는 고양이, 말썽꾸러기인 데다가 이 집 저 집 물건들을 훔치기 바쁜 커플 고양이, 이제는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 시절의 활약상을 이야기하며 자신감에 차 반짝이는 눈빛을 하는 고양이, 한 때는 아름답고 사랑받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뒷골목의 서글픈 신세가 되어버린 고양이까지.
모든 젤리클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때로는 사랑받고,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빛나는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로 특별한 밤마다 함께 모여 끝나지 않을 춤을 추는. 그리고 어쩌면, 이렇듯 특별한 존재들과 늘 함께임을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이 더 반짝이는 건 아닐까.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른 생물 혹은 나와 다른 어떤 존재를 다 이해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그날 ‘캣츠’ 공연을 보며 깨달았다. 꿈꾸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유사한 존재에 대한 오마주 같은 무대와,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그들'을 지켜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