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지음 Jan 19. 2021

어른이라는 직업

로그아웃에 실패하였습니다.

 ‘인맥 관리’는 참 쉽지 않다. 어느 주어를 갖다 붙여도 쉽지 않을 말이지만, 그 주어가 ‘내’가 된다면 더욱 어려워질 게 가장 명백해 보이는 말.


 나는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몸이 안 좋았기에 내 병간호에 힘들어하시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커왔기 때문인지, 남들 눈치는 엄청나게 보면서도 그 눈치에 걸맞은 센스는 반밖에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늘, 나를 탓하게 되었다. ‘저 사람이 지금 이 상황을 불편해하고 있잖아. 적당히 화제를 돌려.’ 내 눈치의 지시에도, 내 센스가 종종 오작동하는 걸 보면서 말이다.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일하고 싶은 로망을 가지고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여러 개이고 그 선택에 내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단 사실을 몰랐던 게 잘못이었던 걸까.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이 눈치를 보느라 집단생활이 힘든 나에게, 20명이 함께 일하는 공간은 정말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미 그 인원에서 압도당하며 한 번,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어나는 상호작용에서 또 한 번.


 휴직을 선택한 이유 중엔 그 사실도 꽤나 크게 작용했다. 미묘한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눈치 보며 견디는 걸,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는 걸 더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런 눈치게임에서 낙오되면 다른 사람의 협조를 얻어 업무를 진행하는 데도 조금씩 차질이 생기는 것까지. 무슨 일을 하든 인간관계를 잘 다져 놔야 업무에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그 흔한 사실이 좀 버거웠던 것 같다. 그래 봐야 남들 눈에 띄게 행동하거나, 내 의견만 고집하며 타인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애당초 되지도 못하는 소심쟁이 예스맨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잠시라도 좀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 3주 차. 휴직 전에는 간과했던 것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알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업무 관련 질문들로 연락하는 후임 2명의 문자나 전화는 예상 범위 내였지만 그 외에 회사 사람들과 연락할 일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미리 신청해놨던 원격 접속으로 회사 내부 시스템에 접속해도, 내가 개인적으로 필요한 문서를 확인하거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직감했다. 그 생각은, 역시 틀렸다는 걸. 휴직하고 있어도 꼭 해야만 하는 연말정산 관련 일처리, 건강검진을 위한 병원 확인 및 검진비 신청 등등. 사무실에서 부대끼던 사람들을 귀찮게 해야만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히게 다가왔다.


 만약 휴직 전의 내가 조금이라도 그 안의 인간관계에서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왔다면, 지금 이 막막한 일들 또한 사무실 밖의 또 다른 인맥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결국 친하거나, 적당히 잘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 한동안은 모르고 싶었던 그 기분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만 같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휴직을 하면 온전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조금 어지럽다. ‘어른’이라는 직업에는 방학도, 휴직도 없는 것을. 만약 지금 한 게 휴직이 아니라 퇴사였다면 그 어려움을 타개할 방법 또한 아마 가장 쉽게는 인맥에서 찾았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현실이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며, 그렇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매일을 견뎌가는 게 미덕이자 때론 희망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도움들에 감사해하며 살아왔음에도, 그 미덕의 빛을 보았음에도, 그럼에도 이따금 조금은 놓아버리고 싶다, 그런 연결들을.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기꺼이 도움을 주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쉽지 않은 한 개인으로서, 가끔은 오롯이, 그냥 혼자서도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잘 해결해내고 견디고 싶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