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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Jan 23. 2021

너의 결혼식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친구의 결혼식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 안 지가 벌써 8~9년은 되었네요. 결혼식에 ‘다녀’온 게 아니라 ‘참여’하고 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들러리? 가방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역할을 부탁받아 수행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발이 넓은 편이 아니라서 그런 부탁을 받은 게 처음이라 ‘가방순이’라는 이 호칭도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봤습니다.


 ‘가방순이’는 도대체 뭘 하면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에도 찾아보고 친구에게도 어떤 일을 도와주면 되겠냐고 물어보아 미리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실전은 다르더군요. 게다가 드레스 자락이나 베일을 들어주는 역할도 조금 도와달라고 해서 초보 ‘가방순이’는 더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지인의 결혼식 날이면 으레 조금 일찍 도착해서 신부와 사진을 찍고 식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축하해주는 정도로만 있어 보았기에, 누군가의 결혼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오래도록(식전 신부 대기실에서부터 식후 옷 갈아입고 정리하는 것까지)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지나가듯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신랑과 인사를 하며 식장에 들어섰던 이전의 기억과는 역시 느낌이 참 많이 다르더라고요.


 신부가 얼마나 힘든 자세로 긴 시간을 버티며 사진을 찍는지, 너무 목이 타지만 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물조차 못 마시고 같은 자세로 연신 웃으며 앉아 있는 게 얼마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지 뭐 그런 것들이요. 신랑은 신랑대로 또 손님들을 맞고 사람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뻘쭘하고 당황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인 것 같았습니다.


 천주교식 미사로 진행된 식은 신부의 드레스와 베일이 잘 정리되게 간수(?)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그것만 신경쓰다 보니 사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끝이 났지만, ‘가방순이’라는 중책(?)을 맡은 덕분에 신부의 가까이에 앉아 결혼식을 구경(?)할 수 있어 여러모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반적인 결혼식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니 아직도 좀 더 그런 류의 사람이긴 합니다. 신부는 다이어트를 해서라도 예쁘게 보여야 하고, 긴 드레스를 입고 앉아 수동적으로 축하객들의 인사를 받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그런 결혼식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 더불어 결혼은 사실 연을 맺는 그 순간부터 (이혼하지 않는 한) 평생을 살아내야 하는 오랜 과정인데, 그 과정의 시작인 결혼식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름답게, 멋있게 치장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예식 자체가 허례허식인 것만 같이 느껴지는 사람 중에 한 명이랄까요.


 그러나 오늘, 친구의 결혼식을 도와주고 내내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만큼 힘들기도 할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걸음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에게서 축하를 받고 그들 앞에서 맹세를 말하는 순간순간들이 새 부부에게 얼마나 축복이고 꼭 필요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요. 또 ‘신부는 예뻐야 한다.’는 진리 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이 추운 겨울 소매도 없는 웨딩드레스를 입어 팔이 시린 예식 시간을 견뎌내야 하더라도, 이 하루 그 순간만큼은 세상 둘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고 싶은 게 신부의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불어 '보편적인' 결혼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모든 결혼식은 신랑신부의 의견에 맞게 수정된, 그들의 평소 스타일이 보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식이구나 하는 생각까지도요.




 시대의 변화와 함께 결혼 풍습이나 모습도 조금씩, 그리고 많이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표준’적인 형태의 결혼식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새 부부의 소망이나 첫 마음일 테니 그것만 충족될 수 있다면 식의 형태나 예식 자체는 어떤 모습이든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게, 스태프로서 참여한 친구의 결혼식을 마치며 느낀 저의 최종 소감이었습니다.



 결론은, 말이 길어졌지만 “결혼 축하한다, 친구야.”입니다.



 -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는 남편을 만나 오랜 시간 끝에 맺은 너의 결실이자 시작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축하해. 오늘 결혼식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일상도 원래의 네 모습대로 현명하고 진실되게, 너에게 꼭 맞는 모습 그대로 잘 걸어 나갈 수 있기를.(근데 결혼은 네가 했는데 왜 내가 더 피곤한 거 같지 친구야...? 콜록콜록. 내 저질체력 알면서 가방순이 시킨 너 반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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