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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Jan 24. 2021

진심이 사라진 자리

잊어버렸던,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

 #1.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실은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이주일에 한 번씩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스스로가 나름 대견하면서도 매번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서 자꾸 당황스럽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글, 재미있을 만한 소재, 참신한 생각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멈춰 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2. 글이란 건, 말과 비슷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각자의 생각이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고, 또한 그것이 어디에 가 닿을지 명확하진 않더라도 그 글의 내용을 들려주고픈 독자들을 가정하고 쓰인다는 얘기.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이야기’와 ‘독자’인데, 지금 나의 글쓰기는 ‘이야기’가 없어진 채로 ‘독자’를 가정하고 있는 상황이란 걸 깨달았다.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글, 재미있을 만한 소재, 참신한 생각 그런 것들 이전에 내가 내 글을 읽어줄 사람(그게 누구이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뭐였을까. 그 ‘이야기’에 대한 고민 없이 글을 쓰고자 하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힌 내 모습이, 본질은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좇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습다.



#3. 생각해 보니, 삶의 어느 장면이든 다 그래 왔구나 싶다.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모르고 그 깊이를 스스로 확신할 수 없을 때 나는 더 예쁜 편지지를 찾아 편지를 쓰려했고, 내 일상과 삶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누구보다 화려하고 잘 포장된 사진 속에 스스로를 남기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진심이 빈자리에,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4. 나의 글쓰기를 되돌아본다. 전하고 싶었던 ‘진심’의 이야기가 사라진 글 속에는 뭐가 남게 될까. 시간이 조금만 지나서 다시 읽으면 스스로도 낯선 얼굴을 한 이야기 속 화자가 나를 생경하게 비웃고 있진 않을까. 내가 내 마음을 몰라 아무렇게나 내뱉은 단어와 문장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독자들에게 나조차 모르는 말들을 건네고 있지는 않을까.


 옛말에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그 손톱을 먹고 내 모습으로 나타나 나인 척 행세한다던데, ‘이야기’라는 정기를 잃어버린 가짜 내가 화자가 되어 글 속에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야지 다짐해 본다. (어차피 부족한 거) 조금 부족해도, 아쉬워도 괜찮으니 진심을 잃어버린, 그 빈자리 따위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 글쓰기 시간이 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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