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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Jan 22. 2021

일상이 일이 되지 않게

놀면 뭐하긴, 힐링하지

 오랜만에 점토를 만져볼 시간이 생겼다. 긴 고민 끝에 약물 복용 대신 시작한 심리 상담 시간에서였다. 모래치료라고 해서 모래를 만지는 시간이었는데, 점토도 함께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하셔서 점토를 손에 꺼내 들었다. 모래는 선생님이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하시는데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당황스러워서 점토가 더 편한 느낌. 뭐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만 마음이 편한 한국인의 정서(?)가 여기도 반영되는 걸까.


 초등학교 꼬맹이들이 준비물로 점토를 사가는 걸 보긴 했는데, 이렇게 좋아진 ‘요새’ 점토는 처음으로 만져보는 기회였다. 요즘 점토의 촉감은 참 신기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무조건 황토색 찰흙 아니면 흰색 점토가 다였고, 그마저도 만질 때마다 손에 처덕처덕 달라붙어서 만들기 시간이 끝나고 나면 꼭 손을 씻었어야 했는데. 역시 모든 좋은 것들은 꼭 내가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나오는가 보다 싶었다.(웃음)


 얼마나 조물조물거렸을까. 얼마 전 서울에는 대설이 내렸다고 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하지 못했던 눈사람 만들기를 했다. 마침 흰색 점토를 꺼내 주셔서 색깔도 딱 맞아 도전하는 참이었다. 목도리도 씌워주고, 단추도 붙여주고, 눈도 붙여주고 하니 꽤 그럴싸한 눈사람이 완성되었고, 이어서 이번에 핫했던 눈오리도 나름 만들어 봤다. 그다지 잘 만든 거 같지 않은데도 선생님이 칭찬해주셔서 민망하면서도 괜스레 웃음도 났다.




 점토를 가지고 노는 동안 상담 선생님은 그런 얘기를 하셨다. 어른들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고. 일만 하려고 사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놀 시간이 잘 없기에 스스로 놀이가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게 좋다고. 때론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진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할 수 있는 놀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내가 웹툰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 이전 얘기를 꺼내 그 또한 좋은 놀이일 수 있다고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을까. 노는 시간이 죄짓는 것만 같아진 건. 분명 긴 하루 끝에 겨우 얻은 나만의 소중한 쉬는 시간이었을 텐데. 하루 종일 지치는 일들과 사람들 속에서 잘 버티고 돌아온 나에게 주는 보상의 시간인데도, 그 시간마저 그렇게 허비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달린 건 왜였을까.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노는 것’은 아이들이나 하는 일이고, 어른은 그런 데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하는 무언의 가치관이 언제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잡아 온 것인지. 그러나 되돌아보면, 숨 막히는 일상 속에서 숨 쉴 틈이 되어준 것은 하루 종일 달라붙어 씨름하던 ‘일’이 아니라 여러 모습의 ‘놀이’였음을 깨닫는다. 나를 웃게 해 준 예능 프로그램, 이따금 하는 핸드폰 게임, 꼬박 한 주를 기다려 보는 웹툰, 때론 원데이 클래스처럼 무언가를 배우고 만드는 일까지. ‘일’만으로도 가득 차서 여백이 많지 않은 일상에, 언제나 쉼표가 되어 주는 건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찾았던 ‘놀이’들이었음을.


 마음의 힘듦마저도 주어진 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얼른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바심 내며 ‘일’처럼 대하던 내게, 오늘의 상담은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싶다. 조금은, 편안해져도 되고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일하는 동안 신경 써 주지 못했던 내 안의 아이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어린 시절 참 하고팠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했던 ‘놀이’를, 이제는 얼마든 해줄 수 있는 힘도, 능력도, 여건도 모두 가지고 있으니 다시 한번 우리 즐겁게 놀아보자고. 그 놀이 시간이, 결국은 남은 그대의 인생도 다시 제대로 살아 숨 쉬게 만들어 줄 거라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자주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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