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집 바로 앞까지 끊어서 아파트 재건축이 되는 바람에, 정남향이었던 이 집의 햇빛 또한 아파트 완공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해가 높이 뜨는 여름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요즘처럼 동절기가 되면 하루에 30분씩만 집 안에서 햇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걸 ‘햇빛 쇼’라고 부른다.
집순이인 나는 햇빛을 참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햇빛을 볼 수가 없어 그냥 포기하고 늘 회색빛 집안에 있는 편이다. 산책이 참 중요하다는 걸 알고 심지어 좋아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고, 귀찮고,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아니기에 부담스럽고 불안해서다.
그러다 오늘, 참 오랜만에 햇빛을 보러 혼자 산책을 나섰다. 모래치료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상담 시간 중에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 햇볕 쬐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를 한 터였다. 그런 내게, 상담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지 말고 좋아하는 햇볕도 좀 쬐면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건 어떠냐는 권유를 들어서 용기를 낸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혼자 길을 나서고, 햇볕을 맞으며 여유롭게 긴 거리를 산책한 건.(실상은 롱패딩 모자를 벗길 만큼 강한 바람에 눈물 나게 추워 뒤로 걸었던 산책길이었지만.) 걸어가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마음대로 사진도 찍어보고, 흔들의자에 앉고 싶어 괜스레 앉아서 흔들거려도 보고. 한동안 유행했던 말처럼 ‘누구누구 하고 싶은 거 다 해’를 직접 실천해 보았달까.
그만큼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을 덜 신경쓸 수 있어 마음이 꽤 편안한 산책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나서는 게 불안하고 쉽지 않지만, 가장 편한 집 안에서는 좋아하는 햇빛을 쬘 수 없어 포기했던 마음에 토닥토닥 스스로 위로를 해 준 기분.
나는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나의 엄마이기도 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진짜 우리 엄마는 집에 함께 계시지만, 이제 더는 어린아이 때처럼 모든 걸 엄마가 챙겨주실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됨을 알기에. 내 마음은 괜찮은지, 컨디션은 어떤지, 뭐가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아무도 물어보고 챙겨줄 수 없는 것들을 나 스스로 챙겨주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지.
길 위에 서는 게 무섭고, 세상으로 나서는 게 두려워도, 나란 ‘아이’는 햇빛을 좋아하니까 스스로에게 햇빛 쬘 시간을 선물해줘야지. 안락하지만 조금은 흐린 집안에만 나를 가둬두지 말아야지. 조금씩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용서를 구하고 그와 친해지는 일에 익숙해져 가야지. 생의 마지막 날, 함께 웃으며 떠날 내 안의 아이에게, 삶이란 너와 함께여서 찬란한 여행이었다고 말해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