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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Jan 30. 2021

숙취해소 대신 알쓰 해소

저도 한국인입니다만...

 # 나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알콜쓰레기’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보통 이슬*톡 한 캔 정도 마시면 꽤 취할 수 있는 정도...? 컨디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술과 물을 1:2 정도의 비율로 천천히 먹었을 때 맥주 3~4잔? 정도가 최고 주량입니다. 정말 빼박캔트 알쓰라서 그렇게 불리는 데에도 익숙하고, 저 자신도 제가 신기할 정도랄까요.


 그런 저라도, 술이 마시고 싶은 날들이 가끔 있습니다. 가령, 며칠 전 마음이 힘들었던 그 날처럼 계속 울다가 속이 상해 맥주라도 한 캔 마시고 싶을 때가. 스스로의 주량을 알기에 거나하게 한 상 차려놓고 마시고 싶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정말, 맥주 한 캔, 도수 4.5% 정도인 수입 맥주 한 캔을 물 없이 안주 없이 마셨을 뿐인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뒹굴거리다 씻으려고 일어났는데, 심장이 조여 오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놀라서 얼른 물 한두 컵 들이켜고 심호흡을 크게 계속했더니 다행히 가라앉았지만요. 좋지 않은 컨디션에 물도 안주도 없이 술만 마셨으니 제 기준 매우 안 좋은 ‘짓’을 하긴 했나 봅니다.




 #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술에 강한 것에 나름의 자부심도 있고, 그런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는,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일수록 더) 기왕이면 술을 잘할수록 사회생활 등등에 유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가끔 있었던 회식에서도 새로 온 남자 직원에게 윗분들이 술을 한잔씩 주시면서 권하셨던 걸 보면 그건 그냥 저만의 느낌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기왕이면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고 싶어요.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겠습니까. 더불어 저도, 소소하게 술 한잔씩 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을 때도 있는 성인이니까요.


 그러나 그건, 슬프게도 저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더라고요. 대학 MT 때 KG* 한 캔 마시고 그 자리에 있는 술 혼자 다 먹은 것처럼 빨개진 제 얼굴을 보며 당황하던 대학 선배들 및 동기들의 표정이 아직도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걸 보면 저도 그런 제가 당황스럽긴 했나 봅니다.




 # 문화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술을 잘 못 마신다고 ‘고백’하는 일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닐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술을 못 마셔서 사람들이랑 친해질 기회가 없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는 일도 종종 있는 걸 보면 확실히 그건 오랫동안 가져온 믿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이 조금씩 깨어지는 날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그건 욕심일까요.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누구의 권유나 강요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들이 충분한,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한다면요.


 이미 그런 시간들이 가까이 다가온 것 같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순간들을 더 종종 만나는 것 같아 괜스레 하소연해 봅니다. 얼마 전 이러다 맥주 한 캔에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놀란 마음 부여잡은 1인으로서. 그럼에도 저 또한, 지난날보다는 성장한(?) 주량이 되었다고 술부심을 가지고 싶은 한국인으로서 계속 살아가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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