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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20. 2021

아들은 아빠의 수영 선생님

이번엔 아들이 아빠를 가르치는 거야

우리 집 앞에는 오래된 복지회관이 있다. 작지만 도서관, 헬스장, 실내배드민턴장 등 있을 건 다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수영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목욕탕 냉탕에서 수영 놀이를 해본 것과 1년에 한두 번 휴가철에 튜브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 놀던 게 물놀이 경험의 전부였다.


하루는 초등학생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주말에 복지회관 수영장에 놀러 갔다. 수영장은 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이용하는지 낯설었다. 레일이 7개 정도 있었는데 레일마다 자유형, 평형 등 영법이 적혀 있었고, 초보, 중급, 고급 등으로 구분해놓고 있었다.


수영장에 들어가 보니 가슴 위로 물이 올라올 정도로 깊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이용할 수 있는 레일은 맨 끝에 한 개가 있었는데, 그마저 반을 막아놓아 깊은 반대쪽으로 갈 수 없도록 해놓았다. 아들은  부력 보조장치와 함께 보호자가 있어야만 반쪽짜리 레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곧 여기가 '한강 수영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 상급반 레일에서는 '실력자'들이 접영의 화려함을 뽐내며 칼로리를 맘껏 태우고 있었다. 수영을 오래 배운 것 같은 아이들도 레일의 물살을 가르며 어른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어쩔 수 없이 레일 수영장 옆에 작은 키즈 수영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들과 난 몇 번 수영장에 수영이 아닌 물놀이를 하러 갔다가, 수영을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어렵사리 수영반 수강권 뽑기에 성공하였다.  


아들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아들은 수영이 재밌있다고 하고 최근 배운 영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가끔 아들을 데리러 가서 기다리는 동안 수영장 2층 전망대에서 구경해보니 제법 수영을 잘하는 아들이 내심 부러웠다.  


발리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외국 사람들이 구명조끼도 안 입고 스노클링만 착용한 채 바다에서 잠수하고 노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문득 '아들에게 수영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들만큼 좋은 선생님이 없을 것 같았다.


주말에 아들과 함께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먼저 쉬워 보이는 자유형부터 가르쳐달라고 하니 '음파'부터 배워야 한다며 T판을 쥐어주었다.


'아빠, 음파를 하면서 T판을 잡고 다리를 흔들어 앞으로 가는 거야'


'이렇게?'


'아니 다리를 구부리면 안 돼 쭉 펴서 흔들어야 해'


다리를 쭉 편 상태로 젓가락처럼 위아래로 흔들어보았다. 반도 못 가서 허벅지 근육이 뭉쳐오는 게 느껴졌다. 내 속도가 늦어지자 뒤에 따라오는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그 사람은 속도를 올리더니 내 옆을 휙 지나갔다. 순간 수영 안경 너머로 '키즈 수영장'을 가리키는 것만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아들은 아빠의 어눌한 동작과 제자리걸음인 물장구를 보며 신나 했다. 아들은 잠수를 해서 내 자세를 교정해주기도 했고 내가 좀 쉽게 하려고 하면 정색을 하고 '그건 좋은 자세가 아니에요'라고 했다.  


이후 주말만 되면 아들은 아빠에게 수영을 가르쳐야 한다고 수영장 가자고 졸라댔다. 아빠를 가르치는 맛을 들인 모양이다. 아들은 내 앞에서 뒤에서 유려한 자세를 뽐내며 나를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했다. 나도 안 되는 것을 자세히 물어보고 잠수해서 아들의 자세를 지켜보고 따라 하길 반복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고, 나는 자유형, 평형, 접영까지 모두 아들에게 배웠다. 물론 자세는 엉성하고, 속도도 아들과 시합하면 이기기 힘들 정도로 빠르지 않지만 그래도 수영을 배운 티가 나는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장에서 아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있는데 옆에 레일에서 한 아빠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시,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손을 이렇게 뻗을 때 다리를 움직이는 거야, 다시 해봐'


그 아빠의 지시에 따라 아이는 자못 진지하게 수영을 다시 했다. 그 아빠는 아들의 손을 잡고 다리를 움직이며 자세를 교정해주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표정을 보니 틀리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옆을 보니 아들도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빠가 아이를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훈련시키는지 나는 모른다. 대회를 앞두고 있는 아이일 수도 있고, 수영선수로 키우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 후로 수영장을 갈 때마다 유심히 보니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부모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수영을 배우는 부모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문득 내가 아들에게 수영을 배우기로 한 것이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아들을 가르치지만 아들도 아빠를 가르칠 수 있다. 아빠와 아들은 그런 수평적인 관계이다. 아들은 어떤 선생님보다도 열심히 나를 가르쳐줬고 나는 아들의 실력을 존중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아들을 대했다.


'아들, 아빠랑 저기 끝까지 자유형으로 시합할까? 이제 아빠 폼도 잡혔거든'


'아빠, 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자유형은 평형보다 자신이 있었다. 이번엔 정말 봐주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옆 레일에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저 멀리 아들이 앞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아빠를 넘어서 신나게 자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들 모습이 내 눈에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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