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가 50km쯤 된다. 그것도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올림픽대로를 뚫고 가야 하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다니기도 만만치 않다.
대중교통으로는 집 앞에 좌석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타는 방법이 그나마 제일 나았다. 다행인 것은 출근길 버스에서, 퇴근길 지하철에서 앉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집이 너무 멀면 종점 근처이기 때문에 앉아 갈 수 있다. 인생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출퇴근 시간에 4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아무리 칼퇴근을 해도 정상적인 워라벨을 영위하기 힘들다. 누구는 왜 이사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를 봐주는 부모님이 근처에 살고 아내 직장이 집 근처라면 내가 멀리 다니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 포기한다고 해도 운동을 못하는 것은 걱정이었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뱃살이 나오는데 어떻게든 운동을 해야 했다. 한동안은 회사에 있는 헬스장을 이용해보려 했지만 운동하고 샤워하고 집에 가면 10시가 넘었다. 일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10시까지 혼자 애 둘을 보라고 할 수는 없었다.
'4시간의 출퇴근은 내가 견뎌내야 하는 업보인가'라는 생각이 들자 실망감, 우울함이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회사가 탄천과 아주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아라뱃길과 멀지 않았다. 그렇다. 자전거길이 우리 집 근처에서 회사 근처까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전거 어플을 깔고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를 찍어보니 52km가 나왔다. 52km면 얼마나 걸릴까? 이게 다닐 수 있는 거리인가? 딱 봐도 쉽지 않아 보였다. 회사에 자전거를 좋아하는 선배에게 물어봤다.
"연습 좀 하면 평속이 한 25km 정도 나오니까, 한강은 오르막길이 많지 않아서 빠르면 2시간 좀 넘겠는걸?"
"2시간이요? 이 정도면 출퇴근에 갈만한 거리인가요?"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에 100km는 기본이야. 어느 정도 타서 익숙해지면 52km면 가능은 해. 하지만 쉽진 않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난 자전거 점포로 달려가 30만 원대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구입했다. 선배는 17kg는 너무 무겁다며 중고를 소개해줄 걸 했지만 아직 자전거에 확신이 없어 처음부터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주말에 날을 잡아 공원도 가보고 아라뱃길에서 한 시간 정도 타보기도 했다. '인생 뭐 있나? 일단 해봐야지'라는 생각에 출근길에 자전거를 무턱대고 끌고 나왔다. 전날 잠도 잘 안 왔다. 평소보다도 1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물을 챙기고, 가방에 옷을 챙겨 넣고, '자전거 저지'를 입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집에서 아라뱃길 시천교까지 4km가 찍혔다. 시천교에서 아라뱃길 종료 구간까지는 딱 10km였다. 김포 물류센터, 인천 북항 터미널을 지나니 한강 공원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한강은 내가 알던 한강이 아니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강물을 반짝이고 푸른 나무에 새소리에 운동하러 나온 많은 사람들까지, 여기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여의도까지 가니 30km가 찍혔다. 여의도 다리 밑 평상에 누어 한참을 쉬었다. 초코파이를 두 개나 먹고 다시 일어나서 자전거에 오르니 엉덩이부터 팔목, 어깨, 허벅지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직도 22km를 더 가야 하는데'
시계를 보니 8시가 이미 넘었다.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반포대교를 지나 저 멀리 롯데 타워가 보이기 시작했다. 롯데타워 근처가 회사인데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롯데타워는 그대로였다. 이제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것 같았다.
탄천으로 갈라지는 길로 들어가니 45km 정도가 찍혔다. 여기서부터 회사까지 7km 남았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니 몸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엉덩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거의 반쯤은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탔다. 체력은 더욱 소진되었다. 마지막남은 7km가 지금까지 온 45km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탄천길을 타고 내려오다 회사로 올라오는 경사로를 향해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저 멀리 회사가 보였다. 핸드폰을 보니 이미 9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첫날 라이딩을 마치고 회사에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전 내내 반쯤 정신 나갔다. 다행히 점심에 숙직실에서 쓰러져 자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첫 자전거 출근이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자전거는 나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되었다. 가끔 금요일 컨디션이 좋을 때는 퇴근길에 팔당대교를 찍고 집으로 가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100km가 나온다.
퇴근길에 한강의 핫플레이스 반포를 구경하고, 여의도의 손잡은 연인들을 지나 아라뱃길로 들어서면 이곳을 나 혼자 전세 낸 것 같은 한적함, 고요함이 있었다. 아라뱃길의 명물 폭포 조명을 뒤로하고 시천교가 붉은색 보라색으로 강을 물들이면 나를 기다리는 가족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한강 공원은 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여 너무 아름다웠고 출퇴근길에 나에게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벚꽃이 한창일 때 여의도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조명에 비친 벚꽃들의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퇴근길에 한강 뒤로 지는 해를 본 적이 있는가? 그 숨 막히는 광경을 보며 페달을 밟아 나가는 느낌은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걸을 때 보이는 풍경은 느리고, 자동차로 이동할 때 보이는 풍경은 너무 빠르다. 하지만 20킬로 정도의 속도로 달리며 보이는 풍경은 지루할 틈도 없이 즐겁고 세세하다. 이제는 자전거로 타고 지나가야 그곳을 충분히 느낀 것 같다.
인생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선물을 숨겨 놓는다. 견뎌야 하는 업보라고 생각했던 4시간 출퇴근길이 이렇게 한강의 4계절의 모습과 건강함, 생기, 활기참을 선물할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은 파견 나와 한강 자전거길을 다시 경험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매일 아침 현관에 거치되어 있는 자전거를 보며 고요한 새벽에 자전거를 끌고 한강을 만나러 출근길에 나서는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