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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26. 2020

게임, 자유, 신뢰 가능할까?

아들에게 전보다 성능이 조금 좋은 노트북을 새로 사주었다. 곧 아들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친구들과 함께 '제대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여러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중엔 컴퓨터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아들도 IT 기기에 관심이 있는 터라 둘이 금방 친해졌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다.


그동안 아빠와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아들 방문 너머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아들의 '즐거운 비명'이 들려왔다. 친구들과 '마인크래프트'를 하는 모양이다. 아들이 친구들과 게임하는 방식도 우리 때와 다르다.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면서 서로 '연결'된 느낌을 즐기며 게임에 몰입한다.


그동안 아들이 많은 친구를 사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날 닮았나?'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종 게임하는 시간이 밤 11시, 12시를 넘기는 일이 생기면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은 중1이 되어서도 PC방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나도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 집에 있는 컴퓨터로는 LOL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은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아들이 밤 12시까지 통화하면서 게임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이제 올 것이 온 건가'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게임 중독으로 인생 망쳤다는 회사 동료의 아들 이야기도 어른 거렸다. 나도 한 때 스타크래프트의 임요한과 홍진호를 좋아했고, 최근에는 LOL 프로게이머인 '페이커'의 엄청난 인기와 성공에 대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 내 아들이 게임을 하는 걸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  


하루는 밤 11시 반 인데도 아들은 친구들과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아들 너무 늦게까지 하는 거 아냐? 12시는 넘기지 말아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며


 "쉿 지금 통화 중이라 친구들에게 다 들린단 말이야!"라고 속삭이며 화난 얼굴을 했다.


나는 황급히 문을 닫고, 일단 물러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 반에 아빠가 아들에게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는 게 상식에 어긋난 것인가? 이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부모가 관철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아들이 게임을 마무리하고 화난 표정으로 방을 나왔다.


"아빠 그렇게 문 열고 바로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요. 애들이 다 들으면 제가 뭐가 돼요"


"그래도 11시 반까지 게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니. 아빠 엄마는 일찍 자니까 네가 언제까지 게임을 하고 자는지 모르잖아"


"아빠 다른 애들은 새벽까지 해요. 저만 항상 중간에 나온다고요. 나중에 다시 게임하면 애들은 이미 많이 진행돼서 좀 아쉽기도 하고 애들에게 못 끼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저는 중간에 마무리하고 나와요.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나 친구들과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 하는 건데 제가 알아서 하면 안 돼요?"


"아들 그래도 12시를 넘기는 아빤 허락할 순 없어. 아무리 네 친구들이 새벽까지 한다고 해도 그건 안돼"


"그렇게 늦게까지 하지 않아요. 제 스스로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아들은 스스로 잘하는데 내가 알아주지 못하는 게 서운하기도 하고, 누군가에 통제를 받는다는 게 답답한 모습이었다.


아들과 격한 대화가 오간 후 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뭐든 스스로 잘해나가는 아들을 신뢰하기로, 믿기로 마음먹었는데 왜 참지 못하고 그 순간에 개입하려고 했을까? 아들이 잘 마무리하고 나올 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설명하고 대화할 수도 있었는데, 그 순간 개입해서 아들의 행동을 그 자리에서 통제하려고 했을까?


나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 오락실에 갔다가 학교에 늦어 학교 담을 넘다 무릎을 다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야자를 마치고 집에 와 새벽 1시까지  '둠'이라는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었다. 가끔은 과하게 해서 게임 영상이 꿈에 나와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그게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학업 스트레스를 무엇으로 해소할 수 있었을까? 술을 먹을 수도, 담배를 필수도 없는데 꽉 짜여진 하루에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내가 아들이 즐겁게 그 시간을 누릴 자유도, 스스로 절제하려는 마음을 먹을 기회도,  과하게 했을 때 후회할 기회도 뺏은 것이 아닐까'


'좀 더 시간을 두고 아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진솔하게 대화할 준비가 되었을 때를 기다렸다면 좀 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막연한 불안감을 걷어내고 아들을 보니, 방학에도 낮에 집에 아무도 없는데, 학원도 가지 않는데, 알아서 공부하고 밥 챙겨 먹고, 집안 청소도 종종 해놓고, 항상 밝고 착한 아들이 감사하고 그저 건강만 해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아들을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아들 아빠가 어제 미안해. 더 믿어주지 못했어. 아들을 아직도 미숙하다고 생각했나 봐. 너도 너의 즐거움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데, 앞으로 아빠가 널 더 존중할게. 아들도 아빠가 걱정하는 부분을 이해하지?"


"네 그럼요"


"그래 아빤 아들 걱정 안 할게. 지금처럼 노는 것도 재밌게, 자기 할 일도 스스로 잘해줘"


믿어준다는 게 쉬운 거였다면 왜 믿어주라고 했겠는가. 믿어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게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실수하고, 실패하고, 잘못된 길로도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 깊이 깨닫고 성숙했지 않았는가?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사실 아닌가?


이제 그 무섭다던 중2에 올라가는 아들이다. 그동안 아빠로서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오히려 내가 더 성숙해가는 것 같다.


게임을 밤늦도록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맞는가? 아이의 반발에 맞서서 강압적인 규칙을 만들고 안 지킬 경우 통제와 벌칙을 주는 게 맞는가?


현실적으로 내가 아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없다. 아빠가 있을 때 안 하는 것처럼 하고, 낮에 하루 종일 게임할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부모의 눈을 피해서 언제든지 게임을 할 수가 있다.


결국, 나는 아들을 전적을 통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기 스스로 조절하고 절제하도록 도와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게임하는 '행위' 또는 다른 어떤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아들에게 자기 삶에 대한 애정,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욕을 통해 자기 스스로 자기 행동을 성찰을 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믿어준다고 무조건 아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아들의 즐기는 게임을 인정하면서 아들의 의욕과 성취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스로' 절제했을 때 그 '대견함'을 주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어쩌면 게임을 금지하고 컴퓨터를 빼앗는 게 더 쉽다. 눈에 보이고 확실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또 그마저도 할 수 있는가?


난 이 방식을 선택하면서 결심을 했다.


이건 당장의 결과에 따라 옳고 그른 게 아니다. 아들이 어떤 대학을 갔다는 걸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아들이 어떻게 자기 삶의 주체로서 성숙해 나가느냐에 관한 것이다. 잠시 나쁜 결과가 오더라도 감수할 것이다. 긴 인생의 관점에서 아들이 스스로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유를 주고, 믿고, 기다리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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