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삽질은 다들 하고 사는 거 아닌가요?

웬만해선 화도 안 나

by 케잌

1. 축축 처지고 무기력해서 억지로라도 웃을 거리가 필요한 요즘, 나의 소소한 삽질 에피소드들을 적어 보기로 했다.

2.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일이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비번 찾기. 임시 비번을 받아서 비번을 변경함과 동시에 까먹어서 다시 그 과정을 반복했다.

3. CFA 시험 날, 재무계산기를 깜박했다(CFA 시험은 재무계산기 없이 풀 수 없다). 기적이 일어나서 시험에 합격했다.

4. 출근길에 날이 좀 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지하철 개찰구에서 누가 알려줘서 알았다. 원피스 옆구리 지퍼를 시원하게 열어 놓고 있었다.

5. 아침에 출근했는데, 사무실 책상에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을 집에 두고 왔다.

6. 화장실 천장에 붙은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투명 비닐우산을 쓰고 한 손에는 돌돌 말은 잡지를 움켜쥔 채 비장한 각오로 천장을 힘껏 올려쳤다. 기겁을 하며 허둥지둥 화장실에서 탈출하려는데 우산이 문에 걸렸다. 필사적인 몸부림 끝에 화장실 문에 이마를 부딪혀서 피멍이 들었다. 시종일관 눈을 질끈 감고 있어서 정작 바퀴벌레는 어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7. 베트남 나트랑 여행 도중 보트 지붕에 누워 자다가 신고 있던 조리 한 짝이 바람에 날아가는 줄도 몰랐다. 하루 종일 맨발로 다녔다.

8. 늦은 밤에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끊어서 공항 근처 호텔을 잡았다. 이상하게 싼 호텔이 있길래 냅다 예약했는데, 경유하는 승객을 위한 transit 호텔이었다. 예약금 날리고, 새로 잡았다.

9. 멀쩡한 내 의자를 두고 옆에 있는 아이 식탁의자에 무심결에 앉아서 처참히 부숴 버렸다.

10. 삽질은 나의 일상이어서 이젠 웬만한 것에는 화가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허술한 면에도 조금은 관대해지고, 다치거나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나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삽질을 좀 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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