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의 궤변
1. 치워도 치워도 다시 엉망이 되는 집을 보며 시지프스를 떠올린다.
2. 어째서 이 노동은 이렇게도 무한히 반복된단 말인가.
3. 고작 원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없다.
4. 내가 특별히 까다롭게 청결한 상태를 희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최소한의 집안꼴을 갖춘 채 살아가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5. 종종 모두들 이러고 사는 걸까, 아니면 뭔가 나만 모르는 음모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6. 애초에 물건들이 ‘사용하기 전’ 상태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거대한 힘이 우리 집에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7. 사실 나의 무의식에는 어질러진 상태를 원하는 강한 욕구가 있는 건 아닐까.
8. 그 두 힘이 만나 우리 집은 필연적으로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내가 그걸 거스르려고 쓸데없는 힘을 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9. 그렇다면 나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순히 항복해야 하는 것 아닐지.
10. 일상이 영위된 흔적이 가득한 상태, 너와 나의 움직임대로 에너지가 흩뿌려진 상태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