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와 분갈이

화분 사이즈를 넘어버린 소망

by 케잌

1. 시골집이 갖고 싶다.

2. 가족들 모두 도시에 모여 살고 있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찾아갈 시골집이 없다.

3. 할머니 댁에 대한 어마어마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소년기 이후로는 명절마다 찾아가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으면서 갑자기 나이 먹어서 시골집 타령이다.

4. 어떤 공간에서 뿌리내리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5.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실제로도 내 것은 아니다) 공간에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뭔가 자꾸 잃어버리는 듯한 기분이다.

6. 나 자신이 분갈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작은 식물처럼 느껴진다.

7. 좁은 화분에서 자라다가 점점 몸집이 커져서 뿌리가 화분 아래 물구멍으로 사정없이 삐져나올 때 즈음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겨지는 식물 말이다.

8. 화분의 사이즈만큼만 자라고, 겨우 숨통을 트일 만큼만 커진 화분으로 계속해서 옮겨가는 동안 진짜 땅에선 살아보지도 못하는 신세.

9.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계속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아파트에서 죽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10. 그게 마치 크게 나쁜 일이라도 되는 듯이… 인생에 그보다 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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