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손질을 용케 피한 한 줌의 머리카락
1. 지하철 역을 우르르 빠져나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 중에서 그가 특별히 시선을 끌었던 건 아니다.
2. 단지, 내내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고, 딱히 눈 둘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우연히 관찰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3. 보기 드문 새하얀 피부에 얇은 금테 안경을 낀 얼굴은 선이 가늘었고, 모직 재킷과 연한 베이지색 통 넓은 바지는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해 보였다.
4. 굵은 컬이 들어간 갈색 머리는 정성스레 잘 손질되어 있었는데, 뒤통수 중앙의 머리 한 줌이 바깥으로 뻗쳐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지 않는 엉뚱함을 자아냈다.
5. 출구 앞의 좁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있는데, 반대편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가 났다.
6. 어르신 한 분이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넘어지신 것이다.
7. 공교롭게도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밖에 없어서 다들 당황해하며 어르신을 일으켜드리려 애쓰고 있었지만 위태위태해 보였다.
8. 다들 그 장면을 바라보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와중에 앞에 서 있던 금테 안경의 남자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며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9. 주름 하나 없는 베이지색 바지가 휙휙 소리를 내며 넘어진 어르신을 향해 달려갔다.
10. 어쩌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뒤통수에 한 줌 삐져나와 있던 그 머리카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