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기표현 방식을 내가 꼭 다 이해할 필요는...
1. 어릴 때 내가 느낀 집안 분위기에는 외모에 신경 쓰는 일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2. 금기라기보다는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것은 좀 모자라고 열등한 일'이라는 취급에 더 가까웠다.
3. 학생이라면 외모보다는 학업에 몰두를 해야 하고, 꾸미는 것은 공부 못하는 '날라리'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은근한 무시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혹은 나와 사촌들이 그렇게 느끼게끔 아주 애를 써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거나).
4. 사촌 언니는 늘씬하고 예쁘고 인기가 많았으며, 외모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5. 언니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타이트한 흰색 상의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온 적이 있다.
6. 흰색 상의는 얇고 비치는 소재였기 때문에 검정 속옷이 살짝 비쳐 보였는데, 그것이 정확히 언니가 의도한 패션이었다.
7. 집안 어른들은 아주 진지한 회의 끝에 이것이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했고, 언니에게 '그런 옷'은 입고 다니면 안 된다는 훈계를 했다.
8. 딸이 '그런 옷'을 입고 다니게 내버려 둔 작은 아버지에게 따끔한 한 마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결국 언니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9. 당시로서는 꽤나 과감했던 그 패션에 나 역시 흠칫 놀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옷을 입고 당당하게 할아버지 댁에 들어서던 언니가 왠지 멋져 보이기도 했다.
10. 지금이나 예전이나 왜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자기표현에 그렇게나 기겁을 하는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