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대충 화해했다

이젠 내가 싫지 않은 걸, 뭐

by 케잌

1. '넌 너를 좀 더 사랑할 필요가 있어.'

2. 술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신 지인이 역시나 술에 잔뜩 취한 나에게 맥락도 한 말이었다.

3. 우리 뒤로는 흥이 폭발해서 노래방 소파를 뛰어다니며 자기만의 춤 세계에 빠져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이 미친 파티를 벌이는 중이었다.

4. 한참 몰려다니던 그 모임에서 그 언니를 만난 것이 아마 그때가 두 번째였나.

5. 나는 20대 후반이었고, 언니는 30살을 막 지나던 참이었다.

6. 우리는 이제 막 만났고, 서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으며, 내가 저런 말을 들을 만한 대화를 그 언니와 나눈 기억은 없다.

7. 내가 한눈에 봐도 상처받은 영혼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던 건지, 저 대사가 술 취하면 나오는 언니의 흔한 레퍼토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내 귀에 대고 저렇게 소리쳤다.

8.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저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나는 아주 내밀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불쾌했고 상처받았다.

9.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이 알코올과 함께 사라졌던 그날 밤의 저 말이 오락가락하는 정신과 소음을 뚫고 내 뇌리에 박혔으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는 건 내가 저 말이 사실이라고 믿었다는 증거이다.

10. 만약 지금 누가 나에게 저런 말을 한다면 '웃기고 있네, 여기서 어떻게 더 사랑해.'라고 해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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